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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가 소리없는 아우성… 한국이나 런던이나 똑같아”

입력 | 2017-09-15 03:00:00

파주출판도시 찾은 영국 북 디자이너 피어슨-그레이




영국의 북 디자이너 존 그레이(왼쪽)와 데이비드 피어슨. 파주=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어제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 가봤다. 영국 런던의 서점 돈트 북스(Daunt Books)와 느낌이 비슷하더라. 소리 없는 시끄러움. 온갖 디자인의 책 표지들이 ‘날 봐 달라’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흥미로운 익숙함이었다.”

영국의 북 디자이너 데이비드 피어슨(39)과 존 그레이(46)가 11∼14일 경기 파주출판도시에서 열린 국제출판포럼 강연자로 한국을 찾았다. 2007년 일간지 가디언이 ‘영국 디자이너 톱 50’에 선정한 피어슨은 4년 전 펭귄북스의 ‘1984’ 특별판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은 인물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책 제목과 저자 조지 오웰의 이름이 감춰지도록 해 ‘검열’이라는 작품 주제를 흥미롭게 전달했다. 그레이는 그라피티 작품에 가까운 과감한 타이포그래피 표지로 명성을 높여 세계 유수 출판사와 작업해온 베테랑 디자이너다.

존 그레이의 2015년 작 ‘Everything Is Illuminated’. 사진 출처 gray318.com

두 사람은 “서로 친하지만 라이벌 관계”라며 “분주하게 아우성치는 북 디자인 홍수 속을 헤매는 독자의 가슴을 파고들면서 ‘유독 도드라지게 속삭이는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성취감이 이 일의 가장 큰 희열”이라고 말했다.

“독서를 좋아하는 내게는 완벽한 직업이다. 작업 전에 공들여 원고를 통독한다. 허투루 읽어 내용을 오해하거나 중간을 뛰어넘었다가는 엉뚱한 디자인이 나온다. 어떤 캐릭터에 집중해 디자인 요소로 반영했는데 그 캐릭터가 중간에 죽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그레이)

“기획 단계에서 요약문만 보고 시작하는 작업도 흥미롭다. 작가와 의논하며 가장 좋은 이미지를 더듬어 찾아가는 쾌감이 있다. 독자, 저자, 서점, 출판사의 상이한 욕구를 허들 넘듯 조율하는 과정을 사랑한다. 모든 게 자유로운 디자인 작업은 정말 지루할 거다.”(피어슨)

대중음악, 영화, 스포츠용품 디자인 작업에도 간헐적으로 참여하는 두 사람은 그보다 보수가 적은 북 디자인을 주업으로 삼은 까닭을 묻자 “이 업계의 연결고리가 돈이 아니라 중독적인 애착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책 만드는 사람들과 일하는 작업은 휴대전화 만드는 사람들과 일하는 것보다 즐겁고 행복하다. 대상의 본질을 분석해 새로운 가치를 덧입히거나 전략적 이미지로 독자의 해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북 디자인은 다른 어떤 디자인보다 흥미롭고 짜릿한 작업이다.”(피어슨)

“글로부터 얻은 수많은 아이디어와 이미지 가운데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뿐이다. 그걸 본 저자가 ‘이건 정말 내 책이네요. 고마워요’라고 말해줄 때가 있다. 이 일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다.”(그레이)
 
파주=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