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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불편 vs 안전… 서울 곳곳 ‘육교 갈등’

입력 | 2017-09-13 03:00:00

초등교 인근 육교 철거 놓고 논란




서울 양천구 신정3동의 금옥 여고 육교. 6월 주민 여론조사 결과 철거하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근처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서울시내 육교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12일 서울시에 따르면 2000년 248개에서 지난해 말 162개로 대폭 줄었다. 육교가 철거된 곳에는 대부분 횡단보도가 그려졌다. 1964년 중구 퇴계로에 처음 등장한 육교는 고가차도와 함께 한때 ‘산업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보행자 중심이라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도시 흉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만만치 않은 유지·보수비용 역시 지방자치단체의 골칫거리다.

그럼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육교 철거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유치원, 초등학교 등 어린이가 자주 다니는 곳의 육교가 그렇다. 다른 주민들은 통행이 불편하고 미관에도 좋지 않아 육교를 철거하자고 한다. 반면 어린 자녀의 안전을 우려하는 학부모들은 강하게 반대한다. 이에 따른 주민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양천구 신정3동 주민들은 지난 1년 지역의 육교를 둘러싸고 갈라졌다. 2001년 만들어진 금옥여고 육교는 왕복 6차로인 신정로와 남부순환도로가 만나는 서부트럭터미널 사거리에서 가깝다. 주위에는 금옥여고뿐만 아니라 금옥중 양천고 백암고 오류중 장수초교가 있다. 가장 가까운 학교 정문에서 약 150m 떨어진 육교로 길을 건너기 불편하고 귀찮은 중고교생들은 무단횡단을 일삼았다.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해 설치한 육교 승강기는 고장이 잦았다. 육교를 없애고 횡단보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민원이 쏟아졌다.

육교를 없애려면 주민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반대 여론이 많은 것으로 확인되면 경찰의 교통안전시설 심의를 거쳐 서울시에서 비용을 지원해 철거한다. 올 6월 신정3동 마을계획단이 주민 326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철거 찬성’이 64.3%였다. 주민 최모 씨(55)는 “수백 m나 되는 길 양쪽이 대부분 아파트와 학교인데 육교 하나만 있고 횡단보도는 없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양천구는 “철거 찬성 응답이 80%를 넘지 않았다”며 육교를 그대로 두기로 했다. ‘찬성이 80%를 넘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철거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초등학교 학부모들 ‘눈치’를 양천구가 본 셈이다. 구 관계자는 “육교를 치웠다가 어린이 교통사고라도 나면 구에서 책임질 것이냐는 민원이 쏟아졌다”며 “이 때문에 기준을 높여 잡았다”고 말했다.

종로구 신영동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됐다. 주민들은 “육교가 있다는 이유로 횡단보도가 없어 무단횡단이 잦고, 골목에서 큰길로 나오는 차량에 대한 좌회전 신호등 설치도 불가능해 상당히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검정초등학교 교사와 학부모들이 학생 안전을 이유로 반대하면서 육교 철거는 무산됐다. 횡단보도를 긋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지만 “초등학생이 많이 횡단보도로 길을 건너면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는 민원이 제기된다.

이 같은 갈등의 배경에는 ‘어린이에게 횡단보도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자녀를 세검정초교에 보내는 박모 씨(35)는 “아이들은 녹색불만 보면 바로 달려 나가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신호를 착각하기도 한다”며 “육교가 훨씬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횡단보도를 그어 운전자가 주의하도록 만들어 차량 속도를 늦추게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반론도 있다. 육교가 운전자로 하여금 차량의 속도를 높이게 하는 데 ‘면죄부’를 줘서 결국 어린이에게 더 위험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얘기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