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 출판평론가
조선의 유득공, 서호수 등과 친분이 깊었던 청나라 관리 이조원은 1782년 5월 ‘사고전서’ 한 벌을 성경(盛京·오늘날 선양)으로 운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만리장성 동쪽 끝 노룡(老龍)에서 장마를 만나 책을 담은 상자가 젖어버렸다. 이조원은 하옥되었다가 충군(充軍), 즉 변방의 군졸로 복무하는 벌을 받았다. 임지로 가는 도중 사면되기는 했지만 ‘사고전서’가 얼마나 중시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795년 정조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중요한 내용을 가려 뽑은 ‘사기영선(史記英選)’을 편찬하면서 정약용, 박제가 등에게 교정을 맡겼다. 정조가 이 책에 들인 정성을 정약용의 다음 기록에서 알 수 있다. ‘자주 마주 대하시며 의논하셨다. 진기한 음식을 내려 배불리 먹여주시고 꿩, 젓갈, 홍시, 귤을 비롯한 귀한 것들을 하사해 주셨다.’ 1796년 완성된 책을 본 정조는 오류와 결함이 많다는 이유로 정약용을 파직했다. 아끼는 신하라 하더라도 아끼는 책에는 못 미친다고 여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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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전통 사회에서 책을 편찬하여 간행하고 보관하는 일은 문치(文治)의 기반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국책 사업’이다. 그런 사업에서 죄를 지은 관리가 파직, 충군, 감봉 등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날이라고 다를까. 국고를 쓰는 학술과 문화 분야 정부 지원 사업의 엄정한 집행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