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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 막는 영장기각” “도 넘은 비난”… 檢-法 정면충돌

입력 | 2017-09-09 03:00:00

국정원 댓글팀-KAI 임원 영장기각 놓고 11년만에 파열음




법원과 검찰이 구속영장 기각 문제로 정면충돌했다. 검찰은 8일 국가정보원의 ‘사이버 외곽팀’ 사건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방위산업 비리 사건 주요 피의자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연달아 기각되자 공식 보도 자료를 내고 법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법원은 반박 의견을 발표하며 검찰에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 서울중앙지검 “적폐 청산 수행 어려워”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새벽 국정원 사이버 외곽팀장으로 활동했던 국정원 퇴직자 모임 ‘양지회’의 전현직 간부 2명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또 서울중앙지검이 유력 인사 자녀 등의 입사시험 성적을 조작한 혐의(업무방해 등)로 이모 KAI 경영지원본부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도 기각했다. “구속을 꼭 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도망 및 증거 인멸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기각 사유였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오전 11시 40분경 출입기자단 e메일로 공식 입장문을 배포했다. “2월 말 서울중앙지법에 새로운 영장전담 판사들이 배치된 후 주요 국정 농단 사건을 비롯해 국민 이익과 사회 정의에 직결되는 핵심 수사의 구속영장들이 거의 예외 없이 기각되고 있다”며 “이전 영장전담 판사들의 판단 기준과 차이가 많아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들 사이에 법과 원칙 외에 또 다른 요소가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0)과 정유라 씨(21)의 영장 기각(각각 2차례)을 사례로 들어 “이런 상황에서 국정 농단이나 적폐 청산 등과 관련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검찰 사명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원이 적폐 청산을 방해한다고 비판한 것이다.

여권 일부 인사도 검찰의 법원 비판에 가세했다. 초점은 이날 양지회 전현직 간부 2명의 영장을 기각한 오민석 영장전담 부장판사(48·사법연수원 26기)에게 맞춰졌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법리로 판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청래 전 민주당 의원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판사”라고 했다. 앞서 오 부장판사는 올 2월 우 전 수석의 1차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대검찰청 수뇌부는 확전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대검 관계자는 “(서울중앙지검이) 대검과 사전에 조율한 바 없다”고 밝혔다.

○ 서울중앙지법 “도 넘어선 억측 부적절”

서울중앙지법은 검찰의 입장문 배포 약 4시간 만인 이날 오후 3시 반경 형사공보관을 통해 반박 의견을 발표했다. “도망이나 증거 인멸의 염려 등 구속 사유가 인정되지 않음에도 수사 필요성만 앞세워 구속영장이 발부돼야 한다는 논리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 어긋난다”며 “향후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치려는 저의가 포함된 것으로 오인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도를 넘어선 비난과 억측이 섞인 입장을 공식 표명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법원 내부에선 검찰에 대한 강한 성토가 쏟아져 나왔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구속이 수사 성공’이라는 잘못된 관행에서 검찰이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양측이 치열한 공방을 벌인 뒤 이날 오후 9시 반경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47·26기)는 서울중앙지검이 공군 훈련기 등의 납품장비 원가를 100억여 원 부풀린 혐의로 공모 KAI 생산본부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 법원 vs 검찰 11년 만에 다시 충돌

법원과 검찰이 영장 기각 문제로 심각한 파열음을 낸 것은 2006년 론스타 사건 이후 11년 만이다.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가 외환은행 주가조작 혐의로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에 대해 4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법원은 모두 기각했다. 유 대표를 포함해 론스타 임원들에 대한 체포·구속영장 기각 횟수는 12차례에 달했다.

당시 검찰은 법원을 향해 “남의 장사에 인분을 들이붓는 격”이라고 비판했고, 법원은 검찰에 대해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고 맞받아쳤다.

이 수사를 지휘한 중수부장이 바로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다. 특검팀에 파견 근무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당시 중수부 소속이었다. 이번 서울중앙지검의 입장문 발표는 윤 지검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석 coolup@donga.com·이호재·허동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