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논설위원
하라리가 먼저 제시한 북한의 미래는 사실 누구나 점치는 뻔한 시나리오다. 이미 정보기술에서 뒤떨어진 북한은 인공지능시대에 더욱 경제·군사적으로 약해지고 이웃 나라들을 공갈 협박하다 결국 붕괴할 것이라는….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뻔하지 않은 시나리오는 무시무시하다.
하라리의 예언 ‘1984 북한’
최근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6차 핵실험은 하라리식 예측이 그저 상상력 끝자락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치기 어렵게 한다. 더욱 어둡게 덧칠된 ‘김정은의 나라’는 하라리의 시나리오보다 더욱 기괴한 초현실 사회가 될 수 있다.
김정은은 최근 화학재료연구소와 핵무기연구소를 방문해 ‘주체탄’의 기술력을 전 세계에 자랑했다. 김정은이 가리키거나 배경 삼아 찍은 미사일과 핵탄두 사진은 전 세계 정보당국과 연구기관의 비상한 관심을 집중시켰다. 전문가들은 ‘뻥’과 ‘레알’ 사이의 논쟁 속에서 대체로 기가 차다는 반응을 내놓는다. 어떻게 저런 수준으로 그런 기술적 도약을 이뤄내는지 놀라울 따름이라는 것이다.
4년여 전 서해에서 건져 올린 장거리 로켓 은하3호의 잔해를 분석한 전문가들의 반응도 그랬다. 중국 등 5개국에서 수입한 부품들이 군데군데 섞인 로켓엔진·연료통의 배선과 용접 상태는 너무 조악해 어떻게 지구 궤도에 올렸는지 신기할 정도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깡통미사일이든, 깡통폭탄이든 태평양을 건널 만큼 높이 올랐고 한반도 북부를 흔들었다. 그것이 현실이다. 김정은이 결심하면 죽기 살기로 만들어내야만 하는 나라이기에 뻥은 레알이 된다.
‘멋진 核국가’가 폭주하면…
그렇다면 그토록 염원하는 ‘핵무력 완성 이후’ 김정은은 북한을 어디로 이끌까. 김정은이 얌전히 인민경제에 힘을 쏟지도 않겠지만 국제적 외톨이 신세여서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거침없이 폭주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50년 전 할아버지 김일성의 ‘국방-경제 병진노선’이 북한 경제를 파탄 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하라리의 시나리오는 우리를 더욱 두렵게 만든다. 북한은 대외적으론 위협과 공갈, 가짜뉴스, 사이버 파괴·교란공작까지 결합한 ‘하이브리드 전쟁’의 무법자가 될 것이다. 대내적으론 어설픈 인공지능 기술로라도 북한을 빈틈없는 감시·통제의 ‘멋진 신세계’로 바꾸려 할 것이다. 이 모든 게 김정은의 삐딱한 날림체 서명이면 가능한 북한이기에.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