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PC 엿본다” 직장인 공포
《회사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고? 직장인 사이에 떠돌던 이른바 ‘오피스 괴담’ 중 하나다. 직원들이 업무용 컴퓨터로 나눈 대화 내용을 회사나 상급자가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가능할까?’라며 의심한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서울의 한 대학에서 보안 프로그램을 이용해 직원의 대화를 엿본 전산 담당자가 적발됐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많이 사용한다.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설치한 최신 보안 프로그램이 오히려 ‘빅 브러더’가 될 수 있다. 》
이 학교가 사용한 시스템은 공공기관과 기업 800여 곳에 공급된 정보유출방지(Data Loss Prevention) 프로그램이다. 민감한 정보가 유출되는 걸 막아주는 게 목적이다. 이를 위해 직원의 컴퓨터 이용 기록 등을 수집한다. 하지만 이 기능이 너무 강력해서 개인정보뿐만 아니라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 일부 프로그램은 카카오톡 등 외부 메신저 대화까지 손쉽게 수집할 수 있다. 다른 프로그램도 카카오톡으로 주고받은 파일명이나 내용을 추적해 차단할 수 있다. 한 보안업체 대표는 “메신저 대화의 전 구간을 암호화하지 않는 이상 대화 내용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은 자신의 컴퓨터에서 이뤄지는 모든 업무와 대화를 회사가 들여다보고 있다는 ‘괴담’이 현실이 됐다며 우려하고 있다. 최근까지 컨설팅업체에 다니던 이모 씨(28·여)는 스마트폰 알림을 통해 회사 컴퓨터의 온라인 메신저가 저절로 로그인된 걸 경험했다. 퇴근 후인 오후 10시였다. 30대 직장인 C 씨는 요즘 회사 내부 와이파이망을 이용하지 않는다. 보안담당자로부터 “당신의 컴퓨터에 업무와 무관한 프로그램이 깔려 있으니 삭제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서다. C 씨는 “회사가 스마트폰 사용 내용까지 엿볼까봐 겁이 났다”고 말했다.
외근이 잦은 박모 씨(33)는 아예 ‘선제적 대응’을 했다. 회사가 웹캠으로 몰래 ‘근태’를 살핀다는 소문이 돌자 노트북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였다. 박 씨는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보안프로그램이 오히려 ‘공포의 대상’으로 꼽히다 보니 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조치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권기범 kaki@donga.com·김동혁·최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