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주연 설경구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 역할 “배우 인생, 새 캐릭터 찾는게 답”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배우 설경구. 쇼박스 제공
김영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서 병수는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또 다른 연쇄살인범으로부터 딸 은희(김설현)를 지켜야 한다. 병수를 연기한 배우 설경구(49)를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스크린 속 설경구는 잔혹함과 부정(父情), 범죄자의 지능적인 모습과 환자의 흐릿함을 비롯해 모순적인 여러 얼굴을 오간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불과 50분 동안 설경구는 ‘캐릭터’라는 단어를 29번, ‘얼굴’이라는 단어를 30번 사용했다.
“나도 꽤 오래 그러고 살았다. 그러다가 반성을 하다 만난 게 ‘살인자의 기억법’하고 ‘불한당’이다. 이 영화부터 ‘이 캐릭터는 어떤 얼굴을 갖고, 어떤 외형으로 인생을 살았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특수분장은 거의 없이 노인 역을 했다.
“자칫 부자연스러울 것 같아 배제했다. 그러다보니 선택할 게 얼굴에 기름기를 빼고 실제로 늙는 방법밖에 없더라. 매일 줄넘기를 1만 개씩 했다. 병수가 ‘살인의 습관’이 있는 것처럼 나는 ‘줄넘기의 습관’이 있다.”
―촬영 중 힘들었던 건….
―시나리오를 읽지 않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작품 설명은 먼저 들었고, 출연하겠다고 한 뒤 원작소설을 읽었다. 무서운 속도로 읽었다. 마치 내가 주인공의 망상을 함께 겪은 것 같았다. 영화는 주인공 병수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등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바꿨다.”
―완성된 영화 시사를 본 소감은 어떤가.
“내 연기만 봐서, 전체적인 흐름은 못 봤다. 내 연기의 사소한 것들이 거슬려서 두 시간 동안 괴로웠다. 소설은 한번에 굉장히 스피디하게 읽은 거 같은데, 영화는 내 생각보다는 천천히 갔다.”
―배우로서 자연인으로서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이제 한국 나이로 쉰 살, 지천명(知天命)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