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역사/설혜심 지음/496쪽·2만5000원·휴머니스트 홈쇼핑, 역무원의 아이디어서 시작… 상점과 거리가 먼 농부들을 위해 카탈로그 만들어 배포한 게 원조 여성 방문 판매원-할부 도입 등 근대 이후 소비의 역사 돌아봐
전 세계 방문판매의 원조격인 미국 화장품 회사 에이본사의 방문판매원 ‘에이본 레이디’의 모습. 에이본 레이디가 우아한 정장에 고급 스타킹과 장갑, 모자까지 갖춰 입고 물건을 판매한 방식은 미국 중산층 여성들에게 세련된 이미지를 심어주며 인기를 끌었다. 휴머니스트 제공
저자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연재했던 글을 책으로 엮었다. 그래서인지 전문성보다는 대중성이 더 짙다. 다양한 소비품 이면에 숨겨진 ‘소비하는 인간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묶어 이해하기 쉽게 풀어나간다.
책에 따르면 홈쇼핑은 흥미롭게도 1880년대 말 미국의 한 역무원의 부업에서 시작됐다. 미국 미네소타주 작은 마을의 역무원이었던 시어스사 창립자 리처드 워런 시어스는 우편주문 방식을 통해 시계를 팔기로 작정하고 회사를 차려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시어스사는 중서부 넓은 평원의 외딴 마을 농부들이 물건 구입에 어려움을 겪는 점을 이용했다. 판매 상품 정보가 실린 카탈로그를 무상으로 배포하고, 주문을 받아 물건을 배송했다. 시어스사는 큰 상점이 존재하지 않는 지역까지 물건을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만들며 미국 시장의 소비 평준화를 이끌어냈다. 이러한 ‘카탈로그 쇼핑’이 홈쇼핑의 기원이 됐다는 분석이다.
흑백을 구분하는 이분법 세계관과 인종차별주의도 소비의 역사에 빠질 수 없는 요소다. 비누는 백색신화를 전파한 최초의 식민주의 상품으로 손꼽힌다. 백인우월주의가 팽배하던 시대에 비누 광고는 ‘흑인마저도 하얗게 만드는 힘’이란 광고 문구를 달고 인기를 끌었다. 오늘날 미백 기능을 갖춘 화장품 등이 여성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면에도 검은색을 띤 것을 차별하는 백색신화의 연장선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외에도 저자는 방문판매의 세계적 원조격인 미국 화장품 회사 에이본사의 여성 판매원 제도를 통해 여성 사회활동 및 여성 소비 마케팅의 기원을 바라본다거나 프랑스 혁명과 영국 혁명을 통해 양복 등 기성복의 발달 과정 등을 분석한다. 또 세계 최초로 할부판매를 도입한 재봉틀 회사 ‘싱어’, 미국 언론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주도한 국산품 애용운동 ‘바이 아메리칸’ 등의 사례를 통해 소비 역사의 흐름을 짚는다. 책에 실린 200여 컷의 그림 및 사진을 통해 근·현대 소비문화의 현장을 접하는 재미도 상당하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