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 자진사퇴
코스닥·비상장 주식 투자로 거액의 시세 차익을 올린 ‘주식 스캔들’이 확산되자 이 후보자는 최근 수차례에 걸쳐 청와대에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청와대가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비공식적인 의견 조율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청와대는 좀 더 지켜보자는 의견이 우세했다”며 “하지만 본인이 다른 사법부 인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 후보자의 사퇴가 주식 투자 의혹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제가 된 비상장 주식은 다른 로펌에 있는 변호사가 이 후보자 등 여러 지인에게 판 것이고, 주식을 산 사람들의 매각 시점은 제각각이었다”며 “제일 먼저 판 사람은 손해를 봤고, 이 후보자는 늦게까지 갖고 있다 매각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자가 미공개 내부 정보를 활용해 비상장 주식을 매입해 시세 차익을 올린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특히 이 후보자 사퇴의 결정타가 된 주식 투자 등 재산 형성 과정은 인사 검증의 핵심으로 꼽힌다. 실제로 청와대가 고위공직자를 검증하는 데 기초 자료로 활용하는 200개 문항의 서면질의서 중 주식 투자와 부동산 거래, 채무 관계 등에 대한 질문은 40개에 이른다.
단기간에 재산이 크게 불어난 이 후보자가 ‘가짜 백수오’ 파동으로 물의를 빚은 내츄럴엔도텍 주식으로 5억7000만 원의 시세 차익을 거두는 등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던 만큼 청와대가 검증 과정에서 문제 삼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야권에선 이 후보자가 문 대통령 몫으로 지명한 인사인 만큼 스스로 검증 기준을 낮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에서 논란 끝에 낙마한 고위공직자들은 모두 문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때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일하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었던 문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으며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2012년 대선 때 자문조직 ‘담쟁이포럼’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 출신인 이 후보자 역시 야당으로부터 ‘코드 인사’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들은 모두 청와대의 지명 철회 없이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
이 후보자의 자진사퇴로 문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헌재 개편 등 사법개혁도 불안한 출발을 하게 됐다. 문 대통령은 인권 보호 강화와 사법부 다양성 확보에 강한 의지를 내비치며 ‘우리법연구회’와 민변 등 진보 성향의 법관들을 중용했다. 하지만 ‘편향된 인사’라는 야당의 반발로 5월 19일 지명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등 사법개혁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후보자 사퇴가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등 다른 사법부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