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는 협력의 뜻 이질적인 것들 사이 유사성 발견해 연결, 결국 창조로 이어져 융합-통섭-협치도 은유에서 출발해야 진보와 발전 이룰것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건명원 원장
은유란 바로 협력한다는 뜻이다. 협력은 아무런 공감대 없이 단절되어 있는 것들끼리 딴살림을 차리다가 서로 연결되어 공감대를 만들어 넓혀가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연결과 협력과 은유와 창의는 모두 한 가족이다.
좀 풀어서 보자. 은유란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서 유사성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전혀 다른 것으로 간주되던 이질적인 두 가지 사이에서 유사성을 발견한 후, 그 유사성을 근거로 상호 개방하여 연결한다. 은유가 일어난 것이다. 이 ‘연결’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전략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 확장이 개시되도록 꿈을 꾸는 일이 상상이고, 확장의 전개를 시도하는 의지가 창의며, 창의의 결과가 창조다. 스티브 잡스가 “창의성은 연결하는 것이다(Creativity is just connecting things)”라고 한 말의 의미가 이것이다. 따라서 창조와 창의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은 없으므로 인간 가운데 가장 탁월한 인간은 은유하는 인간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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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은유는 비틀기다. ‘시간’은 ‘수다쟁이’ 앞에서 자신이 견고하게 지키던 원래의 정체성이 뒤틀리고, ‘수다쟁이’는 ‘시간’을 맞이하려고 스스로를 비틀어 놓았다. 뒤틀린 틈새를 허용하고 또 끼어들어 전혀 달랐던 둘은 상대방을 의지하며 새로 태어난다. 새 ‘시간’이 되고, 새 ‘수다쟁이’가 된 것이다. 바로 창조다. 이리하여 견고한 정체성이 죽음 같은 고정성에 제한받지 않고 은유를 통해 생명력을 새롭게 부여받으면서 현재를 뒤흔들어 미래를 향한 문을 활짝 열 수 있게 한다.
은유는 단순한 수사법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창조적이고 확장적인 삶을 이루는 뛰어난 기술이다. 이 기술이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는 협력으로 구현된다. 융합이나 통섭이나 협치나 하는 것들이 모두 은유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인다. 은유가 되었든 협력이 되었든 중요한 것은 자신을 줄이고 양보하고 조금이나마 무너뜨리는 일에서 비로소 시작된다는 점이다. 자신이 무너지지 않거나 뒤틀리지 않고는 은유가 불가능하다. 창의와 창조가 은유의 결과라면, 구체적인 현실 안에서도 진보와 발전은 협력으로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틀에 갇힌 사람은 과거에 갇힌 사람이자 스스로를 과거화하는 사람이다. 정체성을 견고하게만 다지는 사람이다. 결국 은유와 협력이 미래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건명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