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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서대문 ‘381호 전차’의 낭만과 상흔

입력 | 2017-08-24 03:00:00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전시 중인 381호 전차. 1930년경부터 1968년까지 서울 도심을 운행했다.

땡땡 소리를 내며 전차가 막 출발할 즈음, 아이 업고 뛰어온 엄마가 애타게 손짓을 한다. 엄마 손엔 도시락이 들려 있다. 전차 안, 교복 입은 소년은 차창에 바짝 얼굴을 대고 난처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 옆엔 학교 모자를 들고 따라 나선 여동생이 보인다. 아뿔사, 늦잠 자고 서둘러 나오다 보니….

서울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앞(서대문과 경희궁 터 앞)에서 만나는 1950, 60년대 서울의 지각생 풍경이다. 여기서, 엄마와 아들 딸은 모형(미술품)이고 전차는 실물이다.

전차가 있었다. 지금의 전차와 달리 도로 표면의 궤도를 달리는 노면전차. 우리나라에 전차가 도입된 것은 1899년 5월. 서울 서대문∼종로∼동대문∼청량리 구간이 개통되면서 운행이 시작되었다. 전차는 철도나 자동차에 앞서 도입된 최초의 근대식 교통수단이었다.

전차 운행의 배경에는 고종과 명성황후의 사연이 담겨 있다. 명성황후 사후, 고종은 청량리에 있는 홍릉(당시 명성황후의 무덤)을 자주 찾았다. 황실은 고종의 홍릉 행차로 인해 비용 부담과 번거로움이 커졌다. 이때 한성전기회사의 미국인 콜브란이 그 고민을 알아채고 고종에게 전차 도입을 제안했다. 고종은 흔쾌히 받아들였고 1898년 9월 공사가 시작됐다. 기공식은 경희궁 앞에서 열렸다. 지금 381호 전차가 서 있는 바로 그곳이다.

전차는 충격이었고 일상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일제강점기, 용산 마포 영등포 의주로 왕십리 돈암동 효자동 등 서울 곳곳으로 노선이 연장됐다. 일제는 전차 노선을 건설하면서 한양도성 일부와 경복궁 서십자각 등을 헐어버렸다.

전차는 광복 이후 대표적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50, 60년대 들어 버스의 편리함이 부각되면서 전차의 위상이 흔들렸다. 도로 한가운데를 지나는 전차는 버스의 장애물로 변해갔다. 결국 1968년 11월, 서울에서 전차는 사라졌다. 1915년 운행을 시작한 부산의 전차도 1968년 5월 막을 내렸다.

당시 거리를 누볐던 전차는 현재 3대가 남아 있다. 서울에 두 대, 부산에 한 대. 서울 전차는 1930년대 일본에서 제작해 들여온 것으로 1968년까지 운행되다 현재 서울역사박물관과 국립어린이과학관에 각각 전시 중이다. 동아대박물관에 전시 중인 부산 전차는 미국 애틀랜타에서 운행되다 1952년 원조기구를 통해 부산에 들어온 것이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