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우유 생산량이 월등히 많은 젖소의 가계도를 따져 씨수소를 선발하고, 전용 공간에서 귀족처럼 키운 뒤 추출한 정액을 급속 냉동시켜 농가에 저렴하게 보급하는 일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렇게 해야 남보다 질 좋은 고기를 얻고 우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목장뿐 아니라 기업이나 단체 같은 모든 조직은 저마다 목표가 있으니 세워졌을 테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간과 자원을 투자한다. 하지만 이 나라의 공공기관은 도대체 왜 생겼는지 그 존재의 이유를 궁금하게 만드는 조치가 착착 진행 중이다.
2016년 말 기준 공시대상인 공공기관 중 은행 세 곳을 제외한 329곳의 부채는 499조4000억 원. 개별적으로 보면 한국토지주택공사 133조3468억 원, 한국전력공사 104조7865억 원 등 상상조차 하기 힘든 금액이다. 전문가든 아니든 수익보단 공공성이 강조되는 조직이라고 해도 이런 부채를 정상이라 보는 사람은 없다. 천문학적 부채를 줄여야 국민 생활에 꼭 필요한 공공 서비스를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건 상식이니까.
그래서 이전 정부에선 항상 공공기관 개혁을 앞세우며 조직 축소와 부채 경감 대책을 강하게 요구했다. 물론 은밀하고 조직적인 반발과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 배치가 맞물리면서 성과는 나지 않았고 천문학적인 부채가 지금도 국민의 어깨를 짓누른다.
부채는 안 보이고 돈으로 자리 늘리는 요즘이라 그런지 이명박 정부 시절 한 공기업 임원의 업무용 승용차를 탔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개혁에 앞장섰던 이 임원은 차 안에선 별 이야기를 하지 않다 식탁 머리에 앉자마자 질문부터 던졌다. 내 월급이 얼마냐고 물었다. 당황스러워하고 있는데 질문이 이어졌다. “좀 전에 타고 온 차 운전하던 양반, 정규직인데 연봉이 얼마인지 맞혀 볼래요?”
이리 물어보는 걸 보니 꽤나 많겠다 싶어 선심 쓰듯 ‘5000’이라 질러봤다. ‘눈치 없기는’이란 표정과 함께 “팔·천·만·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런 경험이 있는지라 정부가 공공기관의 효율성을 높일 방안 대신 일자리를 늘리라며 돈을 더 쓰고 조직을 확대하라는 주문이 영 탐탁지 않다.
좋은 사료와 필요한 영양소는 주지 않으면서 질 좋은 고기 만들어 돈을 더 벌겠다고 말만 앞세우는 농장주의 행태와 마찬가지 아닐까. 일등 고기를 만들어 돈을 벌어야 소를 더 키우고 사람을 늘릴 텐데 순서가 바뀌는 중이다. 개그맨 박영진 씨의 유행어 중 하나는 “소∼는 누가 키우나”였다. 이 나라 ‘소’는 누가 키우나, ‘소’를 키우는 게 목표인가, 소 키우는 사람을 늘리려는 건가 어지러울 뿐이다.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