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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달빛처럼 세상을 껴안은 등려군의 목소리

입력 | 2017-07-22 03:00:00

◇등려군/장제 지음·강초아 옮김/564쪽·2만5000원·글항아리
◇가희 덩리쥔/최창근 지음/440쪽·1만8000원·한길사




영화 ‘첨밀밀’ 마지막 장면. 쇼윈도에 진열된 TV를 통해 가수 덩리쥔 부고 뉴스를 보다가 두 주인공이 재회한다. 사진 출처 youtube.com

영화 ‘첨밀밀’(1997년 개봉)을 본 이라면 주인공 리밍(黎明)과 장만위(張曼玉)가 엇갈린 사랑을 나누던 순간순간 흐르던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덩리쥔(鄧麗君·1953∼1995)이란 이름을 함께 떠올릴지 모른다. 등려군으로 더 친숙하게 알려진 그는 ‘첨밀밀’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 등 영화에 삽입된 여러 노래를 부른 가수이자 두 사람이 뉴욕 전자대리점 앞에서 재회할 때 흘러나오던 뉴스의 주인공이다. 리쥔의 팬인 둘은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듣고 발길을 멈췄다 서로를 마주한다.

두 책은 1970, 80년대 조국 대만과 홍콩, 일본, 동남아시아는 물론이고 중국에서까지 뜨거운 인기를 누리다 42세에 요절한 리쥔의 생애를 담았다. ‘등려군’은 대만 저널리스트가 리쥔의 가족과 친구, 음반 제작자 등 200여 명을 인터뷰해 그의 삶을 세밀하게 복원했다. ‘가희…’는 리쥔의 삶과 당시 시대 상황을 함께 조명했다.

덩리쥔은 열 살 무렵부터 매일 새벽 5시에 아버지의 자전거 뒷자리에 타고 강변에 가발성연습을 할 정도로 노력파였다. 스타가 된 후에도 의상 선택부터 화장, 머리 손질까지 직접 했다. 글항아리 제공

가난한 집안에서 5남매의 외동딸(넷째)로 태어난 리쥔은 여섯 살 때부터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학업과 가수 활동을 병행할 수 없어 중학교를 중퇴했지만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 외국어 배우기를 좋아했고 미국에서 대학도 다녔다.

중국 정부는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리쥔의 노래를 금지시켰지만 ‘낮에는 덩샤오핑이, 밤에는 덩리쥔이 지배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일본에서도 싱글 앨범이 200만 장 이상 판매됐다.

사회 문제도 외면하지 않았다. 1989년 톈안먼 사태가 터지자 그는 홍콩에서 벌어진 항의 시위에 참여했고, ‘슬퍼할 자유’라는 싱글 앨범을 내며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다. 가난한 마을에 상수도를 놓아주고 기부에 앞장서는 등 어려운 이들에게 흔쾌히 자주 손을 내밀었다.

굴곡도 많았다. 인도네시아 여권을 사용해 일본에 입국하려다 적발돼 엄청난 지탄을 받았다. 당시 대만과 일본은 단교 상태여서 일본으로 출입국하기가 불편해 인도네시아 유력가가 만들어준 여권을 사용한 것. 대만 연예인들에게는 흔한 일이었지만 국민의 질책은 매서웠다.

사랑 역시 순조롭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재벌 2세와 약혼하고 결혼 날짜까지 잡았지만 파국을 맞았다. 리쥔은 결혼 후 가요계를 은퇴하되 음반만 내게 해달라고 간청했지만 집안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예비 시할머니가 일체의 활동을 금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청룽(成龍)과도 좋은 감정을 나눴지만 연인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천식 발작으로 숨을 거둘 때는 혼자였다. 열다섯 살 연하의 프랑스인 사진가 연인이 잠시 외출한 사이 쓰러졌기 때문이다.

‘등려군’은 방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리쥔의 삶 깊숙이 들어간다. 하지만 리쥔에 대한 지나친 미사여구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담백하게 써도 그가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에 진주 같은 팩트를 다시 꿰기를 권하고 싶다.

마지막에 남긴 미발표 유작의 가사는 리쥔의 생애를 압축한 듯하다. ‘촛불이 고요히 외로운 잠을 비추고, 사랑이란 고통의 바다에 휩쓸리네. 꽃 떨어져도 어쩔 수 없으니, 조용히 강물 따라 흘러가리.’ 길지 않은 시간을 치열하게 살았던 그는 거센 운명의 물결에는 담담히 몸을 맡겨야 한다는 걸 이미 깨달았는지 모른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