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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뷰]161조원 퍼부어도 안되네… 시진핑 ‘고속철 패권’ 급제동

입력 | 2017-07-19 03:00:00

일대일로 내세운 경제영토 확장… 사업 투명성 논란에 정부간 갈등
美-멕시코-리비아 등 사업 잇단 취소… FT “中 철도외교 실패로 돌아가”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15일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발리니 지역. 민둥산에서 덤프트럭과 굴착기가 분주히 움직이며 터널 공사를 위한 토지 평탄 작업을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와 반둥 사이 142km 구간을 잇는 고속철도 착공식 현장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17일 “고속철도가 3년 뒤 완공되면 운행 시간이 3시간에서 40분으로 줄어든다”며 “현지 주민들이 ‘고속철도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갔다’며 기뻐했다”고 전했다. 공사를 책임진 중국철도공사 간부는 착공식에서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공사”라고 말했다. 하지만 관영 신화(新華)통신이 공개한 사진엔 덤프트럭 2대와 굴착기, 불도저 각각 1대만이 등장해 썰렁했다. 본격적인 공사 인력은 아직 투입되지 않은 것이다. 11일 태국 정부는 수도 방콕과 북동부 나콘랏차시마 260km 구간을 연결하는 53억 달러(약 5조9500억 원)짜리 중국의 고속철 사업을 승인했다.

전 세계 대륙과 바다에서 일대일로를 내세운 중국의 경제 영토 확장의 기세가 무섭다. 18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18곳에서 1430억 달러(약 161조 원) 규모의 고속철 공사를 진행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유럽 부흥정책인 ‘마셜플랜’이 현재 가치로 1300억 달러다. ‘중국판 마셜플랜’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하지만 실제론 2014년 완공된 터키 앙카라∼이스탄불 구간 외에는 공사가 막 시작됐거나 아예 공사를 시작하지 못한 곳이 많다. FT는 이를 두고 “중국의 철도 외교가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멕시코 미얀마 리비아 베네수엘라 등에서 사업 투명성 문제와 해당국 정부와의 갈등 등을 이유로 총 475억 달러 규모의 고속철 사업이 취소됐다.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의 투자액 249억 달러의 두 배 가까운 규모다.

갓 시작된 인도네시아도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될지 장담할 수 없다. 토지소유권 보호 관련법이 엄격해 공사 진행을 위한 토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라오스 고속철 공사는 동남아 주요국인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로 연결하는 지점을 확보하기 위해 경제가치가 적은 라오스를 이용하는 것일 뿐이라는 지적까지 듣고 있다. 주변국과의 윈윈을 표방한 일대일로가 실은 주변국의 실질적 이익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따끔한 비판이다.

5580억 달러에 이르는 중국철도공사의 천문학적 부채도 위험요소다. 그리스 국가 부채보다 많다. 위웨이핑(余衛平) 중국중차그룹(CRRC·한국의 코레일) 부사장이 FT에 “사람들은 고속철이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의심한다”고 말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도 중국은 지난해에만 201억 달러(약 23조 원)를 쏟아부어 해외 항구 9곳을 사들였다. 중국에서 북극해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북극항로 개척을 본격화했다.

중국은 최근 아프리카 북동부 소국 지부티에서 첫 해외 군사기지 운용을 시작한 것처럼 경제 투자를 가장해 군사패권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일대일로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인도 등 주변국과의 갈등도 날로 악화하고 있다. 패권적 영토확장식 마구잡이 투자보다 주변국과의 호혜협력을 중시할 때 일대일로에 대한 일각의 거부감도 사라질 것이다.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