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건설 중단 후폭풍]망연자실 울주군 가보니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사 현장 인근의 신리마을 주민이 15일 갈라진 집 벽을 가리키며 “이주시켜 준다기에 수리도 안했는데 이젠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고 했다. 울주=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15일 울산 울주군 서생면 한국수력원자력의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사현장 입구. 협력업체 근로자 김모 씨(55)가 담배 연기 한 모금을 내뱉으며 이같이 말했다. 김 씨는 지난달 말 원전 공사가 중단된 이후 대기만 하고 있어 낮 12시, 이른 퇴근을 하던 길이었다. 김 씨는 그동안 원전 발전기에 전기가 잘 공급되도록 하루 10시간씩 배선 작업을 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숨 막히는 더위, 퀴퀴한 먼지와 싸우며 일했다. 김 씨는 “고단해도 국가 산업에 기여한다는 자긍심이 있어 버틸 만했는데 지금은 밥벌이하려고 뭐든 닥치는 대로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며 허탈해했다.
○ 실직 위기 근로자들 “이젠 진짜 끝”
김 씨는 당장 4월 초 계약한 원룸 보증금 4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할까 걱정이다. 다른 공장에 다니다 김 씨의 권유로 원전 건설 현장으로 옮겨온 친구도 볼 낯이 없다. 김 씨는 “일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돼 공사가 중단되는 바람에 친구 가정까지 망쳐버린 것 같다”며 고개를 숙였다.
한수원 노조는 16일 오후 1시 공사 현장에서 노조원 100여 명이 비상대책회의를 여는 등 조직적 반발이나마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협력업체 근로자는 결집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중단 결정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약자 중의 약자’인 셈이다.
○ “이주시켜 준다더니… 보상은 어떡하나”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사 현장 인근의 신리마을 주민이 15일 갈라진 집 벽을 가리키며 “이주시켜 준다기에 수리도 안했는데 이젠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고 했다. 울주=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이날 기자가 찾은 박모 씨(80·여) 집은 방 천장이 비에 흠뻑 젖어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를 정도였다. 창고도 최근 폭우로 주저앉았다. 박 씨는 “한수원이 이주시켜 준다고 해서 집수리를 미뤄 왔는데 한순간에 배신하면 어떡하느냐”며 “10대 때 이 마을에 시집와서 한평생 원전 옆에서 고통만 받다 죽게 생겼다”고 울먹였다.
울주=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