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의 의료문화’ 펴낸 김호 교수 왕실 출산문화-食治 등 다뤄 “조선은 몸 다스리는 일과 통치 행위 원리가 동일했던 나라”
김호 경인교대 교수가 14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왕세자의 두창(천연두) 회복을 축하하는 병풍 그림 앞에 섰다. 그는 조선시대 왕의 독살설에 관해 “내의원의 어의들이 왕의 신체와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관찰했기 때문에, 내의원이 왕의 신체에 모종의 위해를 가했다’는 유언비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연구서 ‘조선왕실의 의료문화’(민속원)를 최근 낸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50)는 14일 이렇게 말했다. 김 교수는 책에서 정조 독살설의 기원과 확산 과정을 살폈다. 개혁군주 정조가 반대 세력인 노론 벽파에 의해 독살됐다는 정조 독살설은 1990년대 이후 소설과 사극, 대중역사서 등을 통해 확산됐지만 이후 학계에 의해 반박돼 왔다.
내의원에서 사용한 주전자. 은 막대로 주둥이를 막은 뒤 뒷부분을 자물쇠로 잠갔으며 어의들이 임금의 면전에서 열쇠로 열었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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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동 장씨 역모 사건은 이후 영남 남인에 대한 정치 탄압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서술됐고, 이 집안의 억울함을 푸는 것은 남인 전체의 신원(伸원)이 걸린 문제로 확대됐다. 정조의 독살설 역시 힘을 얻게 된 것이다.
근대에 들어 정조 독살설이 ‘역사적 사실’로 제기된 것도 이 같은 남인들의 집단적 기억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독살설을 다시금 소개한 건 영남학파의 거유(巨儒) 면우 곽종석(1846∼1919) 문하에서 수학한 경북 울진 출신의 최익한(1897∼사망연도 미상)이다. 그는 1939년 동아일보 연재에서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 중 인동 장씨의 억울한 이야기에 관해 쓴 ‘기고금도장씨여자사(紀古今島張氏女子事)’를 근거로 정조 독살설을 주장했다.
조선 왕실은 아기가 태어나면 태(胎)를 잘 거둬 항아리 등에 담아 묻었다. 1912년 태어난 덕혜옹주의 태항아리.
사실 책 ‘조선왕실의…’에서 정조 독살설에 관한 내용은 말미의 한 절에 불과하다. 책은 왕실의 출산 문화, 식치(食治·음식물로 몸을 조리하는 것), 왕의 온행(溫幸·온천행차) 등을 통해 왕실의 의료가 성리학적 가치와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탐구한다. 김 교수는 “조선은 몸을 다스리는 일과 국가를 다스리는 통치 행위의 원리가 동일했다”며 “정치와 의료 모두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시중(時中)’을 찾고, 병의 예방을 중요시하는 한편, 왕도와 패도의 조화를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