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 버스’ 운전사 실태 살펴보니
11일 경기 오산시 오산교통 휴게실에 낡은 소파 2개가 놓여 있다. 하지만 쉬는 운전사가 없어 썰렁한 모습이다. 휴게실 입구에 오산교통 표지판이 붙어 있다. 이 회사는 9일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 7중 추돌사고를 낸 광역급행버스를 운행한 곳이다. 오산=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하루 15시간 넘게 장거리 운행을 하면서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버스 운전사들의 피로 누적이 졸음운전 참사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김 씨 역시 전날 19시간 동안 근무하고 7시간 반 만에 또다시 운전대를 잡았다가 사고를 냈다. 장거리를 달리는 운전사에게 의무적으로 휴식을 취하도록 하지만 현장에는 제대로 쉴 공간도, 시간도 없었다.
○ 오이 씹으며 졸음 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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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통화를 하는 게 잠 깨는 데 가장 좋긴 하지만 승객들이 불안해하니까….”
김 씨가 이날 분당과 군포를 4차례 오가며 9시간 운전하는 동안 휴식시간은 점심 때 10분을 포함해 1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회차지인 군포 한세대 앞에 도착해 손님이 모두 내리자 김 씨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소변이 급했던 것이다. 잠시 망설이던 김 씨는 화장실을 포기하고 다시 분당 방면으로 운행을 시작했다.
김 씨는 “회차지 정류소에 따로 화장실이 없어 주변 주유소나 상가건물에 들어가 부탁을 해야 하는데 번거로워서 웬만하면 그냥 참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서대문 부근에서 운행을 하던 한 버스운전사는 용변이 급한 나머지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유소 화장실에 갔다가 한 승객이 운전사를 구청에 신고해 사달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자동차노조)이 2015년 버스 운전사 289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운행하는 버스 종점과 회차지에 화장실이 없다”고 답한 운전사가 전체의 60%에 이른다. 주변에 상가건물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이마저 없으면 도로변에서 해결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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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된 자세로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업무 특성 때문에 ‘직업병’을 앓는 운전사도 상당수다. 경기 평택시에서 버스 운전사로 10년째 일해온 박모 씨(41)는 다리에 하지정맥류가 생겨 2015년에 수술을 받았다. 박 씨는 “50, 60대인 동료 기사들은 방광염이나 전립샘에 문제가 있어 비뇨기과에 다니는 경우가 많다”며 “식사를 할 때는 대충 국물에 후루룩 말아먹기 때문에 소화기 계통 질환도 많다”고 말했다. 자동차노조의 2015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버스 운전사의 27.3%가 어깨와 무릎에 통증을, 23.5%는 요통과 허리질환을 호소하고 있다.
○ 정부, 전국 버스 실태조사 착수
현행 여객사업법 개정안은 시외·고속·전세버스 운전사가 2시간 연속 운전하면 휴게소 등에서 15분 이상 쉬도록 규정하고 있다. 4시간 이상 운전하면 30분 이상 쉬도록 했다. 이를 지키지 않는 업체는 최대 90일 사업정지나 180만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지만 졸음운전으로 인한 버스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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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최지선 aurinko@donga.com / 수원=신규진·정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