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 들러 “경찰에 알려달라”… 종업원에 한국어-태국어 메모 건네 여성 5명 여권 빼앗고 감시… ‘철학관’ 위장 영업 업주 등 3명 검거 성매매 남성 53명 입건… 300명 조사
태국인 성매매 여성이 슈퍼마켓 종업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건넨 쪽지. 서툰 한국어와 영어, 태국어로 쓰여 있다. 부산지방경찰청 제공
남성이 다시 들어와 이들이 가게를 나가자 B 씨는 쪽지에 급히 휴대전화 번호를 적었다. 남성이 신용카드 포인트 적립을 위해 불러준 번호를 외워둔 것이었다. B 씨는 오전 8시 반경 퇴근하면서 부산진경찰서 민원실에 쪽지를 전달하고 슈퍼마켓에서 있었던 일을 신고했다. 외국인이 관련돼 있어 사건은 부산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가 맡았다.
국제범죄수사대가 쪽지에 적힌 번호를 확인해 보니 과거 유사 성매매업소인 키스방을 운영한 전력이 있는 이모 씨(38)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슈퍼마켓 주변의 4층 이상 되는 건물을 중심으로 탐문을 시작했다. 하지만 명확한 단서가 없어 진전은 별로 없었다.
경찰은 이날 오후 9시경 철학관을 급습해 성매매 업주 이 씨와 브로커 김모 씨(40) 등 3명을 붙잡았다. A 씨 등 태국인 여성 5명도 그곳에 있었다. A 씨는 경찰에서 “마사지 업소에 취업하는 줄 알고 왔는데 성매매를 강요당했다”며 “손님들에게 틈틈이 배운 한국어로 쪽지를 썼다”고 진술했다. 나머지 여성들은 성매매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모두 강제 추방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3월부터 철학관을 개조해 태국 여성들을 가둬 놓고 1인당 9만∼16만 원에 성매매를 알선하고 수천만 원을 챙겼다. 브로커 김 씨는 관광비자로 입국시킨 태국인 여성들을 이 씨에게 소개하고 1인당 300만∼500만 원의 수수료를 받은 혐의다.
조사 결과 이 씨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 온 남성의 신분증이나 월급명세서 등으로 신원을 확인한 뒤 업소에 들였고 입구는 철문에 잠금장치를 해놓고 폐쇄회로(CC)TV까지 달았다. 태국 여성들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여권도 빼앗았다. 경찰은 성매매가 확인된 남성 5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이 씨의 휴대전화 연락처에 담긴 성매매 의심 남성 300여 명을 추가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기지를 발휘해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준 B 씨에게 감사장과 신고포상금을 줄 계획이다. 그러나 법원이 “증거가 확보됐고 피의자가 자백했다”는 이유로 이 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상태여서 B 씨는 경찰에 불안감을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