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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거짓말쟁이’ 봤어?…‘봤거나 여러번 봤거나’ 연극팬의 기준

입력 | 2017-06-16 05:45:00

두 명의 와이프를 오가며 몰래 두 집 살림을 하다 들통 날 위기에 몰린 존 스미스(왼쪽·원기준 분)와 4차원 세계의 인간 같은 황당한 캐릭터 바비 프랭클린(김호영 분). 사진제공 ㅣ 파파프로덕션


■ 연극 ‘스페셜 라이어’

올해 20주년 맞아 스페셜 공연
500만 관객·국내 첫 오프런 기록
이종혁·안내상 등 레전드 총출동

‘우리나라 연극팬은 두 부류가 있다. 라이어(Liar·거짓말쟁이)를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이라고 쓰려 했지만, 이내 딜리트 키를 두르르 눌렀다. 이렇게 바꾼다.

‘라이어를 보지 않은 사람은 연극팬이 아니거나, 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연극 라이어가 홍보문구로 사용하고 있는 ‘국민연극’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영화도 아니고 몇 석 되지도 않는 소극장의 연극이 하루 한 번(가끔 두 번) 공연해 관객 수 500만을 돌파했다는 사실이 확고부동한 증거다.

기록을 들춰보면 라이어는 1998년 1월 2일 대학로 바탕골 소극장에서 첫 공연의 막을 올렸다. 보통 소극장 연극이 일주일에서 한 달쯤 무대에 올려지지만 라이어는 그대로 달렸다. 언제까지 달렸는가 하면, 지금도 달리고 있다. 공연이 끝나는 날짜를 정해두지 않고 공연하는 것을 오픈런이라고 한다. 라이어는 국내 최초의 오픈런 공연이었다.

올해가 20주년. 그래서 가뜩이나 인기있고 재미있는 라이어를 더욱 ‘스페셜’하게 만들었다. 제목도 아예 ‘스페셜 라이어’다.

캐스팅부터가 매우 ‘스페에에에셜’하다. 이종혁, 원기준, 안내상, 서현철, 나르샤, 손담비, 홍석천, 김호영 등 영화, 드라마에서 보던 배우들이 줄줄이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무대에 오르고 있다. 이종혁(1999·2000), 안내상(1999·2000)은 실제로 라이어에 출연했던 이력이 있다. 라이어는 이들 외에도 스타배우들을 다수 배출했다. 이문식(1999), 정재영(1999), 김성균(2010), 전미도(2007), 우현(1999) 등이 꼽힌다.

라이어를 보고 있으면 ‘이런 완벽하게 웃긴 작품은 어떤 사람이 썼을까’ 궁금해진다. 영국의 극작가 겸 연출가인 레이 쿠니의 대표작이다. 원제는 ‘Run for your wife(마누라에게 달려가라)’. 몰래 두 집 살림을 하는 택시기사 스미스와 친구 스탠리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좌충우돌 거짓말 퍼레이드이다. 시추 눈깔만하게 시작된 거짓말은 점점 불어나 브라키오사우루스의 엉덩이만큼이나 커지게 된다. 라이어의 또 다른 묘미는 스피드의 섬세한 조절에 있다. ‘안단테(느리게)’로 시작된 극은 ‘모데라토(보통)’을 지나 ‘알레그로(빠르게)’를 거쳐 ‘프레스토(무지 빠르게)’로 나아간다. 급기야 나중에는 연극을 3배속으로 돌려보는 느낌이다. 대사도 대사지만 배우들의 합이 옷핀 꽂을 구멍 하나 없이 딱딱 맞아야 한다. 라이어 배우들의 합은 진짜 ‘예술적’이다.

존 스미스 역의 원기준도 좋았지만 역시 코믹연기의 달인 서현철의 스탠리 가드너는 엄지를 세울 수밖에 없다. 청순한 ‘윔블던 와이프’ 신다은(메리 스미스)와 섹시덩어리 ‘스트리트햄 와이프’ 손담비(바바라 스미스)의 대비도 눈길을 끌었다. 밉지 않은 수다쟁이 바비 프랭클린 역에 김호영만큼 적격인 배우가 또 있을까. 영국에 사는 원작자에게 소개해 주고 싶을 정도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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