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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에 ‘하드 브렉시트’ 휘청… 野 승리땐 ‘소프트 브렉시트’

입력 | 2017-06-06 03:00:00

美-英 리더십 앞날 가를 ‘운명의 8일’
英 조기 총선 D-2… ‘시계 제로’




《 미국과 영국의 정치 리더십이 8일 중대 고비를 맞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내통 의혹 수사 도중 전격 경질된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이날 청문회에 나선다. 증언 여부에 따라 트럼프 탄핵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영국에선 보수당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순항 여부를 결정할 총선이 실시된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통합과 개방이라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고 있는 대서양 동맹의 정치 변화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이틀 뒤(8일) 열리는 영국 조기 총선은 ‘시계 제로’다.

올해 4월 테리사 메이 총리가 조기 총선을 제안할 때만 해도 반수를 훌쩍 넘는 역대 가장 ‘여유로운’ 보수당의 압승이 예상됐지만 한 달 보름 사이 상황은 전혀 달라졌다. 20%포인트가 넘던 보수당과 노동당의 격차는 그사이 1∼9%포인트 차로 좁혀졌다.

5일 조사기관인 유고브 예측 모델에 따르면 보수당은 8일 총선에서 305석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268석을 얻는 노동당을 앞서 1당은 유지하지만 과반수인 326석뿐 아니라 4월 조기 총선 소집 이전에 갖고 있었던 330석보다 오히려 줄어든 수치다.

총선 압승으로 당내 잡음을 없애고 유럽연합(EU)과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을 주도하려던 메이 총리의 계획도 헝클어지고 있다. 야당인 노동당이 1위를 차지할 경우 자유민주당 혹은 스코틀랜드독립당과 연합해 총리가 교체될 가능성이 높고, 새 정부는 EU와 단일시장을 유지하는 소프트 브렉시트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보수당이 1위를 유지하더라도 EU와 단일시장을 유지하라는 야당의 요구는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조기 총선을 계기로 영국 정치는 보수당과 노동당 양당 체제로 회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36.9%)과 노동당(30.4%)의 득표율은 합쳐서 67.3%에 그쳤다. 영국독립당(12.7%)과 자유민주당(7.9%), 스코틀랜드독립당(4.7%), 녹색당(3.8%) 등 군소 정당이 선전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을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은 40∼45%, 노동당은 35∼40%를 얻고 있어 두 당이 80%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 중이다. 공화당과 사회당, 양당 체제가 무너지고 의석 하나 없는 무소속 대통령을 탄생시킨 이웃 나라 프랑스와 전혀 다른 흐름이다.

양당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흡수할 수 있는 계층이 많아졌다. 2015년 총선 때만 해도 보수당은 EU 잔류파와 탈퇴파가 뒤섞여 있어 극우 성향의 반(反)이민 정당인 영국독립당(UKIP)이 오히려 EU 탈퇴를 주도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브렉시트 이후 보수당 정권이 탈퇴 여론을 대변하면서 UKIP의 지지율은 2∼5%로 급락하고 그만큼 보수당 지지율은 높아졌다. 격차 해소를 최대 이슈로 제기하며 좌클릭한 노동당도 녹색당의 표를 거의 흡수했다. 안정적인 경제성장은 정치 불신을 최소화하며 양당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남은 기간 보수당은 브렉시트 이슈를, 노동당은 테러와 세금 이슈를 부각시킬 계획이다.


선거 막판 메이 총리는 중도층을 겨냥해 서민의 세금을 줄이겠다고 발표한 반면, 마이클 팰런 국방장관은 “고소득자의 증세는 없을 것”이라고 밝혀 보수당 내에서 정책 혼선이 빚어졌다. 하지만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브렉시트가 무산될까 우려하는 탈퇴론자들이 선거 막판 보수당으로 뭉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수당은 지난해 6월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를 주도한 중장년층의 투표율이 높은 점에 기대하고 있다.

반면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4일 “메이 총리가 지난 7년 동안 내무장관과 총리를 지냈지만 테러를 막지 못했다”며 ‘안보 무능’을 부각시켰다. 경찰 당국이 지난달 맨체스터 테러를 막을 기회를 다섯 번이나 놓쳤다는 지적에 이어 3일 런던브리지 테러범 3명 중 한 명도 경찰에 두 차례나 신고됐었다는 증언이 나오는 것도 호재다. 이슬람국가(IS)는 4일 선전매체인 아마끄 통신을 통해 “IS의 보안 파견대가 어제 런던 공격을 수행했다”며 배후를 자처했다.

코빈 대표는 내무장관 시절 경찰 2만 명을 줄였던 메이 총리와 각을 세우기 위해 4일 총선 승리 시 경찰 1만 명을 증원 공약을 발표했다. 그동안 노동당이 꺼렸던 ‘테러범 현장 사살’도 용인하기로 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