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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전문기자의 워게임]6월을 맞는 특전사 대통령

입력 | 2017-06-05 03:00:00


윤상호 전문기자

지난 대선 유세 막바지 온라인 공간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사격자세가 화제가 됐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자신이 복무했던 특전사 부대를 찾아 K-1소총을 조준하기 직전 위를 잠깐 응시하는 동영상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사격 전 하늘을 살짝 쳐다보면 동공이 축소돼 조준이 잘된다’, ‘전역한 지 40년이 지났을 텐데 몸이 기억하다니 진짜 군인이다…’ 등 호평이 주를 이뤘다. 군 복무 면제를 받은 유명 정치인들의 엉성한 사격자세와 대비돼 ‘문재인의 특전사 클래스’라는 용어도 회자됐다.

문 대통령은 과거 군 부대 방문 때마다 ‘FM(Field Manual·정석)자세’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2012년에는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병들과 각개전투훈련을 하면서 정확한 소총 파지법을 선보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군 시절 동료들은 그가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오다리(O자형 휜 다리)’ 탓에 차려자세가 불량하다고 지적받자 도복 끈으로 두 다리를 꽁꽁 묶고 잠을 자고, 고참 때도 열외해도 되는 힘든 훈련을 자원했다는 것이다. 준수한 외모에 대학을 다니다 입대한 그를 ‘부잣집 아들’로 봤다가 솔선수범에 감탄했다는 증언도 있다.

문 대통령도 후보시절 군 생활의 남다른 자부심을 피력했다. 지난 대선 경선 합동토론회에서 사령관으로부터 주특기(폭파) 최우수상을 받았고, 국가관과 안보관, 애국심도 군 복무 시절에 형성됐다고 했다. 운동권 전력으로 강제 징집됐지만 군인본분(軍人本分)에 전념했다는 의미로 들렸다.

지난달 취임 후 처음으로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를 찾은 문 대통령을 환호와 박수로 맞이한 장병들도 필자와 같은 생각이 아니었을까. 새 군 통수권자는 누구보다 군을 이해하고 국가에 헌신한 장병들을 존중할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장병에 대한 예우는 군 통수권자의 중요한 책무다. 이념과 계층을 넘어 국민을 뭉치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중 두 차례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미군 전사자 귀환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국방장관,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와 함께 최고의 예를 갖춰 수송기에서 내려진 전사자 유해를 맞이했다. 유족에게 진심어린 위로도 잊지 않았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의 전사자 유족들에게 자필 위로편지를 보냈다. ‘고귀한 희생이 국민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쉴 것’이라는 내용과 함께 전사자 이름을 직접 쓴 250여 통의 편지를 밤새워 작성했다.

대한민국은 그런 책무를 소홀히 한 전력이 있다. 제2차 연평해전 전사자들에 대한 홀대가 그 사례다. 2002년 6월 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지키다 북한의 기습을 받고 숨진 윤영하 소령 등 장병 6명은 국가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았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군 수뇌부는 합동영결식장도 찾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재임 내내 기념식에 불참했다. 진보 정권이 대북관계에 걸림돌이 될까 전사자들을 홀대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유족들은 “내 아들과 남편이 목숨 바친 조국은 어디 있느냐”며 분개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6주년 기념식부터 정부 행사로 격상됐지만 군 통수권자가 참석한 것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나서였다. 이후 정부는 지난해부터 매년 3월 넷째 주 금요일을 ‘서해수호의 날’로 정해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도발의 전사자 55명을 기리는 합동 추모식을 열고 있다.

아직도 군 안팎에선 진보 성향의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NLL을 사수한 영웅들을 내팽개쳤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진보 정권은 남북관계를 의식해 안보를 경시한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런 인식을 불식시키는 것이야말로 과거 정부의 발전적 계승을 약속한 문재인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본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문 대통령이 29일 해군이 주관하는 제2연평해전 기념식에 참석하거나 6용사의 묘역을 찾는 건 어떨까. 일정이 여의치 않다면 유족을 청와대로 초청하거나 6용사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발표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보수와 진보, 여야를 초월한 군 통수권자의 결단에 국민들은 큰 박수를 보낼 것이다. 대화는 하되 도발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대북정책의 원칙을 각인시키는 계기도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노무현 전 대통령의 8주기 추도식에서 국민 모두의 정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꿈이라고 강조했다. 나라에 목숨을 바친 영웅을 기억하는 군 통수권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 지름길이라고 본다.
 
윤상호 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