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당시 사형선고받은 버스운전사 인터뷰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배모 씨(71)는 광주에서 버스 운전사로 일하던 34세의 평범한 가장이었다. 당시 27세의 군 법무관이던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64)가 배 씨에게 내린 사형 선고는 배 씨는 물론이고 가족의 인생까지 뒤바꿔놓았다. 배 씨는 32개월간 복역하고 출소한 뒤 ‘시국사범’ 꼬리표 때문에 오랜 기간 보안당국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배 씨는 3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37년 전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김 후보자에 대해 “나를 재판한 사람도 결국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운명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배 씨 옆을 지킨 딸은 “역사의 비극 속에 한 가정이 파괴됐지만 (김 후보자로부터) 직접적인 사과가 한 번도 없었다”며 원망을 나타냈다.
○ “저분은 좋은 자리로 가는데 내 인생은…”
배 씨는 당시 자신이 들이받은 벽이 경찰의 저지선이고 그 때문에 경찰관 4명이 숨진 사실을 몰랐다. 그는 “다음 날 버리고 도망쳤던 버스를 찾으러 사고 현장을 찾아가다 경찰에 체포되고 나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았다”고 말했다. 배 씨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앞이 안 보여서 들이받은 것이지 고의로 사람을 친 게 아니다”라고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배 씨에게 사형을 선고한 1980년 10월은 김 후보자가 육군 법무관으로 복무한 지 10개월쯤 된 때였다. 1982년 8월까지 군 복무를 한 김 후보자는 다수의 5·18 관련자 재판에 참여했다.
배 씨는 1995년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5·18특별법)이 제정되자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을 맡은 광주고등법원은 1998년 6월 “최루탄 연기 때문에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고의 책임을 운전자인 배 씨에게만 묻는 것은 부당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으로 살인 누명은 벗었지만 32개월의 복역과 보안당국의 감시로 심한 고초를 겪은 배 씨는 김 후보자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털어놨다. “당시 군 판사로서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저분(김 후보자)은 저렇게 좋은 자리로 계속 가는데 내 인생은 뭔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 자유한국당 “김 후보자 부적격” 공세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은 4일 “문재인 정부는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고 주장하는데, 김 후보자는 5·18 당시 시민군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 공로로 상도 받았다”며 “헌재 소장으로 부적격 인사”라고 비판했다. 한국당의 이 같은 공세에는 계산이 깔려 있다. 문재인 정부가 ‘호남 공략’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는 만큼 5·18 판결 논란이 부각될수록 여권이 김 후보자를 두둔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한국당의 판단이다.
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4일 김 후보자 부인 정모 씨의 농지법 위반 의혹을 제기했다. 정 씨는 2004년 충남 서산시 부석면 991m² 규모 농지를 주말농장 명목으로 1290만 원에 매입해 위탁경영을 맡겼다가 2011년 8월 농어촌공사에 1887만 원을 받고 팔았다. 곽 의원은 “주말농장 목적의 농지는 일반적 농지에 해당되지 않아 위탁경영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배석준 eulius@donga.com·신광영·최고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