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문화부장
1976년 8월 2일자 동아일보 1면 톱 ‘양정모 선수, 건국 후 첫 금메달’이라는 제목의 기사다. 꽤 감상적이지만 당시에는 이 표현이 자연스러웠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첫 금메달의 감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태정태세문단세…’, 이런 식으로 외운 조선 왕의 계보처럼 ‘첫 금메달=1976년 몬트리올, 레슬링 양정모’는 머릿속에 콕 박혀 있다.
‘첫’이라는 단어의 카리스마는 강력하다. 처음이 없다면, 그 처음은 숙제가 되고 결국 벽이 된다.
광고 로드중
29일 폐막된 제70회 칸 영화제를 다룬 뉴스들은 비교적 젊은 스웨덴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43)의 황금종려상 수상과 홍상수 감독의 ‘그 후’, 봉준호 감독의 ‘옥자’ 등 한국 영화의 수상 실패를 알렸다.
우리 영화계에서 칸 영화제가 산악인의 에베레스트 등정처럼 도전해야 하는 벽이 된 것은 오래된 일이다. 그 비장한 순간, 운 좋게 현장에 있었다.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처음 진출했다. 이 작품은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첫 진출이라는 성과를 남겼다. 당시 이미 60대 중반이던 그는 칸에서 건강을 이유로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이거 참, 칸 영화제가 뭐라고!”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40여 년 전 양정모 선수가 금메달을 놓고 몽골 오이도프와 맞선 것처럼 임 감독도 ‘국가대표’의 심경으로 영화제에 임했던 것이다. 거장에게도 첫 도전은 긴장과 고독, 그 자체였다.
그로부터 2년 뒤 임 감독은 ‘취화선’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면서 국가대표의 멍에를 벗었고, 이후 박찬욱 홍상수 감독이 새 국가대표로 나섰다.
영화계에 따르면 국제영화제와 감독은 묘한 ‘궁합’이 있다.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칸은 임권택 박찬욱 홍상수, 베니스는 김기덕 감독, 이런 식의 조합이다. 영화제는 자신이 조명한 감독의 작품들을 지켜보며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광고 로드중
하지만 한국 영화는 자산도 적지 않다. 세계적으로 드물게 자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50% 안팎으로 높은 수준이고 한류라는 강점도 있다.
칸과 아카데미의 벽을 넘어서는 첫걸음은 다양성의 확대다. 독점적인 위치의 배급망과 투자 능력이 있는 몇몇 제작·배급사의 눈에 들어야만 영화가 제작될 수 있는 환경으로는 어렵다. 그 영화가 그 영화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그들의 셈법에 맞추기 때문이다. 영화제가 원하는 작품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 한두 편 연출한 뒤 개점휴업 상태인 감독도 많다. “영화 한 편 망하면 몇 년간 백수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게 공공연한 얘기다. 이래서는 안 된다. 임권택 감독의 103번째 작품부터 젊은 감독의 신작까지 다양한 장르와 예산의 작품이 나와야 한국 영화의 ‘그 후’가 열린다.
김갑식 문화부장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