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추적 보도했던 본보 황호택 기자 추가취재 통해 ‘…6월 항쟁’ 출간 부검醫 “동아일보 보도로 사실 드러나 감정서 사실대로 쓰겠다고 결심” “朴씨 가족이 화장 원해 합의했다”… 사망 당일 경찰 거짓말 새로 밝혀
1987년 1월 24일 고려대 학생들이 고(故) 박종철의 시신 화장 현장을 다룬 동아일보 ‘창(窓)’ 기사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서울 성북구 안암동 교문을 나서고 있다. 동아일보DB
서울대생 박종철 씨가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졌음을 입증한 의사 오연상 씨의 증언이다. 6월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려는 언론의 노력을 조명한 책이 나왔다.
1987년 당시 5년차 기자로 동아일보 법조팀장이었던 황호택 동아일보 고문(전 논설주간)은 ‘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 항쟁’(블루엘리펀트)을 최근 출간했다.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는 양심적인 관계자들의 증언과 폭로가 결정적이었지만 언론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저자는 당시 취재기자, 수사 관련자와 제보자들을 다시 만나고 자료를 수집해 그 과정을 치밀하게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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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 19일자 1면.
언론 보도는 사건 관계자가 용기를 내도록 돕기도 했다. 부검의 황적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박사는 일기에 “(16일자 동아일보를 보고)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고 판단했고, 어떤 일이 있어도 감정서만은 사실대로 기술해야겠다고 결심”이라고 썼다.
동아일보가 그해 5월 22일자에 치안감을 비롯한 상급자들이 고문치사범 축소 조작을 모의했다는 것을 폭로한 보도는 결정타가 됐다. 이날 남시욱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에게 청와대 정무수석이 전화를 했다. “남 형 축하해. 귀지(貴紙)가 이겼어. 진상을 밝히기로 결정했어.”
저자는 사건과 관련된 새로운 사실도 일부 밝혀냈다. 경찰은 박 씨가 숨진 날 저녁 최환 서울지검 공안부장을 찾아와 “가족과 합의했다. 오늘 밤에라도 화장을 해서 유골 가루를 달라고 한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당시 박 씨 가족에게는 죽음을 알리지도 않았다. 또 6월 항쟁 당시 민병돈 특전사령관이 “군이 시위를 진압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보안사령관을 통해 전두환 대통령에게 전했다는 사실도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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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황호택 고문은 “사건 30년 만에 쓰는 후속 보도”라며 “민주화를 이룬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을 기록하려는 사명감으로 썼다”고 말했다. 심재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책에 기고를 싣고 “동아일보가 당시 어떻게 한국 언론의 향도(嚮導) 역할을 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저서”라며 “언론인 고문 등 명백한 위협 앞에서 동아일보는 사인(死因)과 은폐조작의 전모를 밝히는 대특종을 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