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그런데 항상 정권 초기에 터져 나오는 의료 인력 부족 논란보다는 무너진 ‘의료전달체계’를 세우는 게 훨씬 중요한 문제다. 올바른 의료전달체계란 환자가 동네의원(1차 의료기관)을 방문해서 해결이 안 되면 중소병원(2차 의료기관),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3차 의료기관) 순으로 찾아가 진료를 받는 것이다. 대부분의 병은 1, 2차 의료기관에서 해결할 수 있다. 특히 고혈압 당뇨병 비만 고지혈증 같은 만성질환 또는 생활습관병은 1차 의료기관에서 철저히 관리를 받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3차 의료기관은 암 또는 중증 환자, 희귀질환자, 심한 합병증 환자 등이 가면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많은 환자가 동네의원에서 치료받으면 될 질환을 갖고 대학병원에 간다. 상급종합병원을 찾은 경증(가벼운) 당뇨병, 고혈압 환자 수만 봐도 2014년에 22만 명, 2015년에 23만여 명에 달했다. 여기에는 비현실적인 수가 문제도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광고 로드중
그렇다면 동네의원 본래 기능을 살리면서도 환자에게 요긴한 도움을 줄 수 있는 1차 의료 활성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사실 환자가 직접 병원을 선택해야 하는 한국 의료의 특성상 어떤 증상이 생겼을 때 무슨 과의 어떤 의사를 찾아가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필요한 전문 정보가 없어서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병을 키우는 경우도 많이 봤다.
한 환자가 두통 때문에 동네의원을 찾았다. 의사는 두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진단하기 힘들다. 그러면 이 의사에게 그 질환에 대해 전문성을 가진 어느 병원의 어떤 의사를 찾아가라는 내비게이션 기능을 하게 해주면 어떨까. 또 척추 질환, 무릎관절 질환, 고혈압까지 겹친 복합질환 노인 환자가 동네의원에 왔을 때 신경외과로 먼저 가야 할지, 심장내과로 가야 할지 또는 정형외과로 가야 할지 환자를 코디네이션해 주는 기능을 하게 해주면 어떨까.
지난 정부부터 1차 의료기관 활성화를 위해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 환자들을 위한 관리 사업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1차 의료기관이 내비게이션, 코디네이션 기능을 잘할 수 있도록 다양한 병원 정보를 제공하고 대형 병원 연계 시 관련 수가를 만들어 주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는 환자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반대로 큰 병원에선 수술 환자를 해당 지역의 1차 의료기관에 보내 관리될 수 있도록 정부가 수가로 잘 보상하면 1차 의료기관의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사족이지만 우리나라 의사 중 전문의가 무려 90%에 이르는 것도 시간과 인력의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전문의 자격증을 딴 의사 중 5600명이 전문과목을 포기하고 일반 의원으로 개원했다는 통계가 단적인 예다. 이미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노인 환자가 급속히 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의도 필요하겠지만 노인 환자의 질환을 전체적으로 보고 관리해 줄 수 있는 1차 의료인의 양성도 필요하다.
광고 로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