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연습이다/글렌 커츠 지음·이경아 옮김/368쪽·1만5000원·뮤진트리
“연습을 늘려갈수록 귀가 손을 능가한다. 나를 넘어서는 음악이 나를 유혹하고 그걸 낚아채기 위해 발버둥치게 된다.” 연습실의 기억을 돌이킨 여러 문장이 영화 ‘위플래쉬’(2014년)의 연습실 분투를 연상시킨다. 동아일보DB
방구석 짐짝으로 수명을 다한 기타 세 대를 볼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는 독자에게,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대상을 포기한 뒤 그 시간의 속내가 실은 사랑이라 여길 자격조차 없는 동경일 뿐이었음을 돌이킨 독자에게, 이 책은 값지다.
저자는 여덟 살 때 클래식기타 레슨을 받기 시작해 미국 보스턴의 명문 뉴잉글랜드 음악원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이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연주 경력을 쌓던 중 문득 ‘음악가로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음’을 확인하고 연주를 멈췄다. 이 책은 그가 문학으로 전공을 바꿔 10년간 음악을 끊고 지내다가 어느 날 불현듯 기타를 꺼내 연습을 다시 시작한 뒤 쓴 이야기다.
실패한 음악가의 연습 기록을 읽는 효용은 뭘까. ‘이렇게 연습하면 실패한다’는 식의 안내문은 아니다. 오랫동안 사랑했다가 그만큼 오래 외면했던 대상과 함께한 경험의 복기다. 문장 마디마디 또렷한 고통이 배어난다. 세월의 파도에 수없이 쓸려도 갈수록 더 정갈한 요지만 드러나는 대상에 대한 기록이다.
“음악의 경험에 대해 설명해 보라. 언어의 한계를 느낄 거다. 악기 연습은 열망하는 장엄함을 향해 손을 뻗지만 끝내 움켜쥐지 못하고 놓쳐버리는 감각을 느끼는 행위다. 음악뿐 아니라 사랑하는 것을 추구할 때 누구나 겪는 일이다. 내 손이 표현할 수 있을 듯한 소리보다,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가 더 아름답고 명료할 때 다가오는 고통.”
저자 글렌 커츠.
그는 “연습은 이야기”라고 거듭 말한다. 음악에 결론이 없듯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히 털어놓았다. 그리고 다시 기타를 감싸 안고 앉아 소리굽쇠를 무릎에 두드린 뒤 현을 조율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