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진균 정치부 차장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들기 전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문 대통령의 경남 양산 집을 찾았다. 집 마당에 향기가 아주 진한 나무 은목서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구경하러 간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 교수는 문 대통령 부부와 친분이 깊었다.
은목서를 살펴보던 유 교수는 옆에 있는 고사 직전의 말라비틀어진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그는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에게 “이 정도면 베어 버리는 게 낫지 않냐”고 물었다. 김 여사는 화들짝 놀라며 “안 돼요”라고 했다. 어느 날 문 대통령이 “나무야, 빨리 병 나아서 잘 커라. 그러지 않으면 우리 마누라가 너를 확 베어 버린단다. 그러면 안 되잖니. 꼭 나아라”라며 나무를 어루만지는 모습을 김 여사가 우연히 봤고, 이 때문에 이미 죽은 듯 보이는 나무지만 뽑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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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질 뻔했던 감나무는 3년 후 기적처럼 열매를 맺었다. 문 대통령은 1월 펴낸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감나무의 회생을 두고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마음으로 격려하고 응원을 해주면 언젠가는 (나무에게도) 목소리가 들린다”고 썼다.
5·9대선에서 문 대통령은 41.1%의 득표율로 대한민국의 19대 대통령이 됐다. 지금 대한민국은 치열한 대통령 선거를 거치며 각 당은 물론 진영으로 나뉜 국민 간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진 상태다.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절반이 넘는 국민의 마음은 지금 고사 직전의 말라비틀어진 나무와 비슷한 상태일 것이다. 여기에 경제 불황, 일자리 부족 등 민생 위기에 북핵 위기까지 더해져 말 그대로 암울한 상태다.
문 대통령은 산과 나무, 꽃, 동물 등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가 서울 생활을 위해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백련산 인근의 자택을 마련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근처에 산이 있는지’였다고 한다. 양산 자택에서 키우고 있는 반려견 ‘마루’ ‘깜’과 고양이 ‘찡찡이’ ‘뭉치’는 ‘퍼스트 펫’으로 청와대에 입성할 예정이다. 늘 “양산에서 마루와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고 했던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스스로 얘기하듯 ‘운명’처럼 현실 정치로 소환됐고, 이제 대통령이 됐다.
충돌하고 네 편 내 편 선을 그어야 하는 선거는 끝났다. 나무에게도 말을 걸었던 문 대통령의 정성과 노력이 감나무를 살려냈듯이 그가 대한민국 곳곳의 ‘적폐’를 베어버리기보다 치유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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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정성으로 죽어가던 감나무가 3년 만에 주렁주렁 열매를 맺었듯 5년 후의 대한민국도 그랬으면 한다. 그리고 문 대통령도 경남 양산의 자택에서 ‘완벽한 하루’를 맞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