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군 교동면 대룡시장 동산약방의 내부. 이 약방은 1961년경 영업을 시작했다.
1950년대 피란민이 몰리면서 교동 대룡리에 생계를 위한 물물교환 시장이 생겼다. 그때까지 교동에 시장이 없었기에 시장은 새로운 문화였다. 자연스레 피란민들뿐 아니라 강화의 원주민들도 시장 주변으로 몰렸다. 교동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지금도 대룡시장 골목길엔 오래된 간판들이 사람을 맞이한다. 연안정육점, 교동철물, 강화상회, 중앙신발, 교동이발관, 동산약방, 제일다방, 시계도장포, 거북당, 영운모타, 교동은혜농장…. 제비가 많이 찾아오는 곳답게 건물 처마 곳곳에 제비집도 많다. 모두 1960, 70년대 풍경이다.
그러나 사정이 바뀌어 교동의 인구가 줄면서 대룡시장은 왜소해졌다. 시장의 주역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1969년부터 시계포를 운영했던 황세환 씨는 2016년 세상을 떠났다. 시계포의 시간은 거기서 멈추었다. 간판만 걸려 있을 뿐, 내부는 짐들이 내팽개쳐져 있어 황량하기만 하다. 어쩌면 약방도 이발소도 없어질지 모른다. 21대째 교동에서 살아오고 있는 방형길 교동향교 전교는 이런 상황을 안타까워한다. 대룡시장 노포(老鋪) 주인들의 출생 연도를 줄줄이 꿰고 있을 정도이기에 안타까움은 더하다.
최근 들어 대룡시장의 미래를 두고 이런저런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시계포, 이발관, 약방이 문을 닫고 그저 세트장처럼 활용되어선 곤란하다. 카페가 득세해서도 안 된다. 대룡시장엔 실향의 아픔이 있다. 그 아픔의 흔적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에서 시장의 미래를 논해야 한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