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날 수 없는 굴레니까 무서운 거겠지 ―공터에서(김훈·2017년)
내 아버지는 영어 교사가 꿈이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다. 할아버지의 뜻이었다. 할아버지는 건설 현장의 일용직이었다. 쿠웨이트라는 이름도 환경도 낯선 곳에서 힘겹게 일한 경험도 있다. 그곳에서 현장 관리자를 선망의 대상으로 지켜봤기에 큰아들인 내 아버지가 “나처럼 살지 말라”며 토목학을 전공하길 원했다고 한다. 그 인연으로 30년 남짓 아버지는 전국의 건설 현장을 떠돌았다. 나도 덩달아 학교를 밥 먹듯 옮겨야만 했다.
김훈의 책 ‘공터에서’는 ‘마동수’와 그의 두 아들 ‘장세’ ‘차세’의 이야기다. 마동수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전쟁을 겪은 뒤 1972년 좁고 차가운 방에서 혼자 죽는다. 소설에서 두 아들은 아버지가 겪은 외로움과 슬픔, 고통을 애써 외면한다. 하지만 ‘혈연(血緣)의 굴레는 핏빛만큼 진했고 폐타이어’만큼 질겼고 3부자는 그렇게 살아야 했다. 마차세는 세 부자의 생김새가 똑 닮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몸서리쳤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니까 무서운 거겠지”라고 외치면서…. 하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가는 마동수와 두 아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고통을 일련의 한국 현대사와 병치해서 보여준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 가운데 사업 문제로 구속되는 마장세와 그와 연루돼 직장을 잃는 마차세의 삶과 마동수가 죽는 대목은 삶의 아이러니와 고단함을 보여준다.
고통의 순간마다 부모를 원망했음에도 그런 부모가 내게 “너는 네 의지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라”라고 말해준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길 수 있어서다. 이 책이 이 땅의 많은 아버지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