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일용 경감 4월말 명예퇴직 “유영철-강호순 잔혹함에 힘들어… 정년 8년 남았지만 물러날 때, 경험 정리해 후배들에게 도움줄 것”
이달 말 명예퇴직하는 권일용 경찰청 범죄행동분석관. 한국 프로파일러 1호인 그는 이상범죄 연구란 ‘자아실현’을 위해 경찰복을 벗기로 했다. 동아일보DB
2000년부터 권 경감은 세상을 경악하게 한 범죄자들과 마주했다. 정확한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다. 연쇄살인범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토막살인범 오원춘, 초등생 성폭행범 고종석 등이다. 그들의 내면을 끄집어내고 특징을 이해해야 사건의 실마리를 풀고 범죄를 막기 위한 대책을 세울 수 있었다.
17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권 경감은 “이들을 보면서 인간의 잔혹함이 어디까지인지 짐작 가지 않아 힘들었다”며 “‘피해자가 운이 없어 그런 것 아니냐’고 탓하는 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해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오랜 ‘감정노동’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는 1989년 8월 순경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해 1993년 감식요원으로 과학수사 분야에 첫발을 내디뎠다. 2000년 서울지방경찰청 범죄분석팀에서 심리분석을 맡아 1호 영예를 달았다. 살인 사건 같은 죽음을 업으로 삼으며 명예를 얻고 상도 받았다. 권 경감은 “큰 상을 받으며 머릿속에 떠오른 얼굴은 가족이나 동료가 아니라 담당했던 사건의 피해자 가족”이라며 “타인의 불행인 범죄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 계속 미안했다”고 말했다. 죽음 앞에서 변치 않는 겸손이 그를 17년간 버티게 한 힘이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