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절 서방이 소련 지배층의 동향을 포착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개발한 방법이 ‘크렘리놀로지(Kremlinology)’다. 크렘린(Kremlin)에 학문을 뜻하는 ‘-ology’를 붙인 용어다. 소련 정치국원들이 찍힌 사진 속 서열이나 당 기관지에 실린 기사, 성명 등을 분석해 크렘린 움직임을 간접적으로 파악했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숨진 1982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볼셰비키 혁명 65주년 기념 열병식이 열렸을 때도 서방은 이를 관람하는 정치국원들 면면에서 후계자를 찾아내려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15일 북한 조선중앙TV가 내보낸 북한군 열병식 생중계 화면에는 2월 숙청됐다고 통일부가 보고한 김원홍 국가보위상이 주석단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등 핵심 실세들을 처형하는 데 앞장섰던 그가 김정은에게 허위 보고를 일삼다가 연금됐다더니 두 달 만에 건재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동안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이 북의 요동치는 권력부침을 말해준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