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몰 미로가 들어서기 한참 전인 1980년대 후반 서울 지하철 2호선 삼성역에 반지하 대형 서점이 한 곳 있었다. 널찍한 중정(中庭) 쪽으로 커다란 창을 틔워 놓은 그 서점 안에서 10대 때 제법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서점에서 책 말고는 달리 파는 물품이 없던 시절이었다. 서고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몇 권 넘기다 보면 창가 볕이 불그스름해졌다.
독서의 동력 중 하나는 지적 허영심이라고 생각한다. 소화 못할 단어로 그득한 페이지를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욕심껏 눈에 우겨 넣어 넘기곤 했다. 한자 빼곡한 책을 훑어 넘기는 꼴이 안쓰러웠는지 어느 날 한 중년 신사가 다가와 말했다.
“학생, 이 책은 너무 어려워. 저쪽에 같은 내용을 쉽게 풀어 쓴 학생용 책이 있으니 한번 봐.”
10대 학생이었을 때의 나는 어째서 ‘학생용 책’을 보기 싫어했을까. 그 버릇이 여전히 남아서인지 책팀 주간회의 때도 청소년용 책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지난주 우연히 청소년용 책을 주로 내는 한 출판사 대표를 만나 그렇게 하는 까닭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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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선지 부끄러웠다. 주말에 읽을 청소년용 책을 한 권 챙겼다. 30년 만에.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