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건 사회부장
식사 도중 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어이 동생∼ 괜찮으니까 이리 오게.” 30분쯤 뒤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법조담당 기자를 할 때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에서 본 간부 검사였다. 2005년엔 지방 고검에 있었다. 다른 검사 1명과 같이 방에 들어서더니 곧바로 의원 앞에 무릎을 꿇었다. 두 손으로 술을 따랐다. “형님∼ 안녕하셨습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 의원은 호기롭게 술잔을 받아 마셨다. 검찰 정기인사가 임박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이 검사는 인사에서 주요 보직을 맡지 못했다. 얼마 뒤 대법원에서 당선 무효 판결을 받은 의원이 힘을 제대로 못 썼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2017년. 요즘 같은 대선 시기엔 정치권을 향한 물밑 작업이 더 치열하다. 새 정부에서 튼튼한 동아줄이 될 정치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 여부 결정을 앞두고 검찰 안팎에서 이런 얘기가 많이 돌았다. “유력 대선 주자가 영장 청구에 찬성할까, 반대할까. 그게 기준이다.”
물론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오로지 수사 성과로 실력을 입증하고 보직 경쟁을 하는 검사가 많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인사가 날 때마다 좌절하고 갈등에 빠진다. ‘나도 뒷배를 찾아야 하나.’
검찰 내부에서 “검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검사 자신”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까지 나온다. 정치권에 진 인사 빚을 갚기 위해 ‘맞춤형 수사’를 하고 그 대가로 다음 인사에서 또 덕을 보는 경우를 목도한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로부터의 수사권 독립을 원하는 경찰은 바로 이 약점을 파고들었다. 7일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검찰은 국정 농단의 최소한의 공범”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검찰은 “심각한 명예훼손”이라고 반박했다. 정말 그럴까. 그보다 검찰은 어쩌다 이렇게 경찰이 검찰을 노골적으로 정면 공격할 수 있게 됐는지 곱씹어 봐야 한다. 한 40대 검사는 “지휘 대상인 경찰마저 우리를 우습게 보니 동네북이 다 됐다”고 한탄했다.
하지만 검사가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규정하고 선언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모든 검사는 임관할 때 ‘검사선서’를 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중략)…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검찰청법 4조에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 규정돼 있다. 정치권에 무릎 꿇고, 충성 맹세하고 수사와 인사를 맞바꾸는 건 명분이 뭐든 ‘공선사후(公先私後)’가 아니다. ‘사선공후(私先公後)’다. 정치권이 유혹하든 압박하든 거부하고 견뎌내야 검사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