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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장남 왕’ 거부한 경복궁, 청와대 주인은 어떨까

입력 | 2017-04-10 03:00:00


한양(서울)은 서북쪽(인왕산)이 높고 동남쪽(낙산)이 낮은 지세다.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한양은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아서 장자(長子·장남)가 눌리고 지자(支子·맏아들 외의 아들)가 잘된다. 왕위 계승자와 높은 벼슬아치들 중에는 대개 지자 출신이 많다.”

조선 중기 유학자 성현(成俔·1439∼1504)의 ‘용재총화’(1504년)에 실린 한양 풍수론이다. 실제 산세가 그렇다. 북악산 자락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남쪽의 낙산(해발 125m)은 나지막한 산으로 청룡(靑龍)에 해당한다. 경복궁에서는 건물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 반면 서북쪽의 인왕산(338m)은 기세당당한 호랑이가 웅크려 있는 모습으로 백호(白虎)에 해당한다. 대체로 청룡은 장자·남성을 주관하고, 백호는 지자·여성을 주관한다고 본다. 낙산보다 인왕산 기운이 강하므로 장남보다는 차남 등 지자가 더 힘을 발휘한다는 게 전통 풍수적 시각이다.

한양의 ‘지자득세(支子得勢)’ 풍수설은 당시로서는 매우 위험천만한 표현이었다. 왕위를 이어받는 장자(왕세자)들의 용린(龍鱗)을 건드리는 반역 행위로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성현이 이런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조선의 장자승계 원칙에 거스르는 글을 남긴 이유는 뭘까.

성현은 23세(세조 8년)에 과거에 급제한 이후 연산군까지 모두 4명의 왕을 모신 고위 관리였다. 왕실과도 가까운 인척이다 보니 ‘장남 왕’들이 단명하거나 왕권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현장을 보며 자랐다. 그가 어린 시절 임금이었던 5대 문종은 조선 역사상 첫 번째 장남 왕이었다. 병약했던 문종은 재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망했다. 문종의 장남인 6대 단종도 재위 3년여 만에 세조의 쿠데타로 쫓겨났다. 이후 10대 연산군에 이르러 세 번째 장남 왕이 탄생했다. 그런데 연산군마저 날이 갈수록 폭정을 했다. 결국 성현은 연산군의 무자비한 숙청 등을 지켜보면서 ‘용재총화’를 집필했고, 사후 부관참시를 당했다.

성현의 풍수적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연산군은 집권 12년 만에 폐위돼 강화도로 유폐됐다. 네 번째 장남 왕인 12대 인종 역시 재위 1년을 못 채우고 사망했다. 14대 선조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경복궁에 풍수적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그는 전쟁으로 완전히 불타버린 경복궁을 버리기로 했다. 그 대신 응봉 산줄기에 자리한 창덕궁 등에서 정사를 펼쳤다. 궁의 주산(主山)이 바뀌었으니 한양 기운도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던 것. 이로써 조선의 법궁 경복궁은 흥선대원군이 중건하기까지 무려 270여 년간 방치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에서 배출한 총 27명의 제왕 중 장남이 왕위에 오른 경우는 단 7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대부분 단명하거나 왕위를 제대를 누리지 못했다.

경복궁의 지자득세설은 현대에도 작동할까. 대한민국 건국 이후 과도기적 수장인 윤보선·최규하 전 대통령, 여성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대통령들의 가족 이력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장자가 아닌 지자였다. 장남으로 알려진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도 원래 장남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는 2남 중 장남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필자가 10여 년 전 노 전 대통령의 생가 일대를 답사할 당시 만난 지역 원로는 달리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모는 일찌감치 아들 하나를 잃어버렸고, 다시 어렵게 얻은 아들(노태우)의 이름에 장수와 출세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 ‘우(愚)’ 자를 썼다는 것.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형제 두 명을 어린 시절 모두 잃어버리는 바람에 외아들이 됐다고 한다. ‘장남 액땜’을 한 경우라고나 할까.

5월 장미대선의 유력 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공개된 가계대로라면 남동생을 둔 ‘완벽한’ 장남이다. 조선 왕조에서도 장남으로서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하고 천수를 다한 왕이 딱 한 사람 있다. 제19대 숙종(1661∼1720)은 무려 46년간 통치하면서 임진왜란 이후 가장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장자(외아들) 출신이다. 장남도 경복궁에서 버텨낼 수 있음을 보여준 유일한 사례다. 만약 두 후보 중 한 명이 당선돼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친다면 경복궁의 후원 자리에 자리한 청와대에서는 더 이상 지자득세설이 유효하지 않음을 입증하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만일 ‘장남 대통령 후보’가 청와대의 주인이 될 경우 그에겐 땅 기운도 이겨낼 만큼 강력한 통치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가 바라보는 대선 관전 포인트다.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