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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운 “하찮은 벌레? 신비한 물질 가득한 인류의 보물창고”

입력 | 2017-04-08 03:00:00

[윤영호 전문기자의 人]‘애벌레 사랑’ 20년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




이강운 소장은 애벌레가 활동하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애벌레를 키우고 관찰하고, 연구하느라 하루 4시간 이상을 자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 소장이 곤충의 생활사를 정리한 표본 상자를 들고 애벌레들의 행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에서 대량 증식에 성공한 멸종위기종들. 위부터 붉은점모시나비, 애기뿔쇠똥구리, 물장군. 횡성=박경모 기자 momo@donga.com·이강운 소장 제공

윤영호 전문기자

2011년 12월의 어느 추운 겨울날. 영하 26도까지 떨어진 혹한의 날씨에 어이없는 광경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봄에나 구경할 수 있는 애벌레가 살을 에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것. ‘곧 얼어 죽겠지’ 하는 안타까움과 ‘그렇게 철을 모르니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이지’ 하는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얀 모시적삼에 붉은 무늬를 수놓은 듯한 고운 자태로 유명한 멸종위기종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였다. 2006년 포획 허가를 얻어 강원 삼척 서식지에서 2쌍을 채집해 와 대량 증식 작업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이번에도 실패하는 게 아닌가 하고 낙담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움직이는 애벌레가 점점 늘고 있었던 것.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도대체 먹을 것이나 있을까? 자세히 살펴보니 손톱 끝만큼 나온 기린초 어린 싹을 먹는 게 아닌가. 급히 먹이를 제대로 공급하자 다음 날부터 활동하는 애벌레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일부 백과사전에선 아직도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는 3월 하순∼4월 상순에 알껍질을 뚫고 나온다’고 설명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동안 이런 상식을 믿고 봄이 될 때까지 알을 보관만 하고 있었으니 부화한 애벌레가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었을 게 뻔했다. 붉은점모시나비 대량 증식 작업이 지지부진했던 이유를 알아내는 순간이었다. 이를 밝혀낸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강운 소장(59)은 “붉은점모시나비는 곤충학자라면 누구나 대량 증식을 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나로선 큰 행운이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 소장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대량 증식에 성공하면서 이 나비의 생활사와 생태를 조사하기 시작한 것. 몇 년간의 연구 끝에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는 영하 35도의 혹한에도 살아남을 수 있고, 알은 영하 47.2도까지 버틸 수 있음을 발견했다. 몸속 수분이 얼지 않도록 하는 항(抗)동결 물질 때문이다.

그는 최근 이런 결과를 곤충학 분야의 국제과학기술논문 인용 색인(SCI)급 국제 학술저널 두 곳에 투고했다. 현재는 게재 여부를 결정하려고 심사 중인 상태. 이 소장은 “이 학술지에 게재한 다음엔 연구를 계속해 ‘네이처’에 투고할 예정”이라면서 “지난 20년간의 애벌레 연구를 총결산하는 차원에서 도전해 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강원 횡성군 갑천면 산골에 이 소장 혼자 설립한 이 연구소는 멸종 위기 곤충의 인공 증식, 유전자 다양성 확보, 생태 복원 시도를 위한 방사 연구 등을 한다. 또 먹이사슬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애벌레도 연구하고 있다. 홀로세는 지질학상의 개념으로 1만여 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가리킨다.

그는 붉은점모시나비 외에도 멸종위기종 2종을 증식하는 데 성공했다. 2003년 채집한 애기뿔쇠똥구리 16마리를 현재 1000마리 이상으로 증식했다. 또 2007년 채집한 물장군 6마리를 증식해 2012년부터 매년 50쌍 이상씩 방사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전북 익산시 소라산 자연마당 내 습지에 물장군 70쌍을 풀어놓았다.

“멸종위기종 한 종이 없어지면 생태계 시스템이 무너진다는 얘기는 이제 식상하다. 붉은점모시나비의 항동결 물질은 말할 것도 없고 물장군이 작은 물고기나 올챙이, 개구리 등을 잡을 때 쏘는, 뱀보다 더 강한 독성 물질, 또 쇠똥을 먹고 살면서 쇠똥에 알을 낳는 애기뿔쇠똥구리가 보유한 항균 물질을 활용할 기회 자체가 없어진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나비로 변하는 순간이야말로 창조의 시간”

그가 이 연구소에서 키우는 애벌레는 매년 1000종 안팎. 곤충 중에서도 애벌레에 꽂힌 이유는 곤충의 한살이 가운데 가장 긴 기간이기도 하지만 단백질 덩어리여서 미래 인류의 식량 자원으로도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애벌레 연구는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없는 분야여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적다는 점도 그를 움직였다.

“애벌레 하면 어른벌레가 되기 전의 미성숙한 단계, 또는 식물에 해를 끼치는 징그러운 벌레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해충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이후 몇 번씩 허물을 벗고 성장했다가 고치를 만들고 그 속에서 번데기로 변해 있다가 고치를 뚫고 날개 달고 나오는 모습을 보면 창조의 순간이란 이런 것인가 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애벌레 자체의 삶을 관찰하는 것도 경이로움 그 자체”라고 말한다. 자기가 먹는 식물과 같게 몸 색깔을 바꿔 가면서 위장을 하는 놈이 있는가 하면 위장된 두 눈과 두 개로 갈라진 꼬리를 흔들면서 마치 자신이 뱀인 것처럼 행동하는 놈도 있다. 건드리면 고약한 냄새를 뿜어내면서 격하게 반응하는 놈도 있다.

그뿐인가. 안정된 번식을 위해 스스로 밀도 조절을 하는 놈들을 보면 이미 중용의 자세를 배운 것으로 보인다. 종내 경쟁을 하지 않는 애벌레와 어른벌레는 생존경쟁이 치열한 인간보다 지혜롭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마디로 생존의 달인인 셈이다. 벌레라고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소장은 “200만 년 전 지구상에 출현한 인류는 단일종이지만 1억5000만 년 전에 출현한 곤충은 200만 종이나 된다”면서 “종으로서의 인류는 진화 측면에서 따지면 곤충보다 한 수 아래”라고 설명했다. 결국 곤충과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에 곤충과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가 발견한 신기록종 홀로세큰날개뿔나방. 이강운 소장 제공

그는 그동안 애벌레에 빠져 살면서 지난해 말 현재 곤충 4850종 20만 점의 표본을 정리해 놓았다. 이 과정에 세계적인 신기록종인 홀로세큰날개뿔나방 1종과 홀로세좀나방 등 국내 미기록종 7종을 발견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공공 연구소도 하기 힘든 일을 그 혼자의 힘으로 해 온 것이다. 그는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물론 애벌레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린 아기를 돌보는 것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사육 상자에는 애벌레마다 독특한 먹이 식물을 싱싱한 상태로 공급해야 하고 물에 적신 키친타월을 바닥에 까는데 곰팡이가 슬지 않도록 몇 시간마다 배설물을 제거해 줘야 한다. 그는 애벌레 키우기에 관한 한 동갑내기 부인 이정옥 씨에게 많은 빚을 졌다.

“산속 오지 생활을 마다하지 않고 함께 내려와 가장 든든한 정신적 후원을 하는 것 외에 애벌레의 까다로운 식성에 맞춰 가면서 무한한 애정으로 아이 키우듯 애벌레를 길러내는 건 거의 온전히 아내의 몫이었다. 새로운 종을 발견하면 뛸 듯이 기뻐하고 애벌레를 돌보고 관찰하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애기뿔쇠똥구리 증식을 할 때 연구소 뒷산 방목장에서 키운 소의 무거운 똥을 운반하느라 고생한 탓인지 지금도 허리가 온전하지 않다.”



‘미래의 블루오션’ 곤충학 이끌 제자 양성의 꿈

그는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말 나방 애벌레 153종을 정리한 도감 ‘캐터필러Ⅰ’을 출간했다. 캐터필러란 나비와 나방의 애벌레를 따로 부르는 이름이다. 애벌레의 한 순간을 담은 도감은 있었지만 이 도감처럼 생애를 모두 다룬 것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유충(幼蟲) 같은 일본식 한자어를 애벌레로 바꾸는 등 순우리말을 사용했다는 점도 돋보인다. 그는 올해 안에 Ⅱ, Ⅲ권을 계속해서 펴낼 계획이다.

“세계적인 곤충 분류학자 박규택 강원대 명예교수도 빼놓을 수 없는 은인이다. 끊임없이 공동의 관심사를 나누는 동료이자 영원한 스승이다. 앞으로도 애벌레를 키우면서 발견하는 신종이나 미기록종에 대해 박 교수님과 함께 논문 작업을 할 것이다.”

그가 인생의 행로를 바꾼 계기는 동아일보사가 운영하는 문화센터에 근무하면서 7년간 맡았던 생태 탐사 프로그램이었다. 이때 곤충과 식물을 유난히 좋아했던 어린 시절 꿈이 되살아났고, 1997년 아예 사표를 던지고 이곳으로 내려온 것. 처음 홀로세생태학교를 설립해 운영하다 2005년엔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도 신설했다.

지금은 3만여 평의 터에 곤충박물관, 실험실, 교육관, 연구관 등을 갖췄다. 2007년엔 서울대 농대에서 곤충 관련 연구로 박사학위도 받았다. 그러나 그동안의 고생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 1980년대 중반 이후 주식과 부동산으로 번 돈 40여억 원을 지금까지 쏟아부은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초기에 갈라진 방바닥 사이로 올라온 가스에 중독돼 온 가족이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그는 “따지고 보면 동아일보가 일찍부터 환경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한 게 내 운명을 결정한 셈이 됐다”면서 “이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니 금의환향한 기분이다”고 웃었다.

“2005년 환경부로부터 서식지 외 보존기관으로 지정받아 운영비의 절반을 보조받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운영에 애로가 많다. 그래도 소박한 꿈이 있다면 안동대 제자(그는 이 대학 겸임교수다) 7명이 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는데 이들을 잘 키워서 이들이 미래의 블루오션인 곤충학을 개척하는 데 힘을 보태도록 하는 것이다.”
 
생물자원 확보 지지부진

한반도 자생 생물 10만 종… 절반 이상 목록 구축도 못 해


한반도에 자생하는 생물은 모두 10만여 종으로 추정된다. 온대지역 국가 중 국토 면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양한 편이다. 이 가운데 조사 및 발굴 작업을 통해 목록 구축 작업을 완료한 종은 지난해 말 기준 4만7003종. 이 가운데 곤충이 1만6993종으로 가장 많다. 하지만 한반도 생물의 절반 이상이 미(未)기록종인 셈이다.

이런 현실은 정부가 생물자원의 중요성을 뒤늦게 인식한 때문이다. 환경부는 2006년부터 자생생물 발굴 사업을 시작했고, 다음 해 이를 전담할 기관으로 국립생물자원관(자원관)을 설립했다. 자원관 설립 이전 기록종이 2만9000여 종이었음을 감안하면 지난 10년간 1만8000여 종의 목록을 새로 구축한 셈이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강운 소장은 “생물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은 이제 단순한 환경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생물자원을 이용해 신물질을 개발한 결과 이익이 발생한 경우 과거엔 개발 회사에 독점적인 이익을 보장해 줬지만 2010년 10월 채택한 나고야의정서에 따라 생물자원 보유국도 그 이익을 공유하게 됐다는 점에서 생물자원도 국부의 원천이라는 얘기다.

정부는 2020년까지 자생생물 조사·발굴 사업을 확대해 총 6만 종을 기록할 예정이다. 한반도에 사는 생물의 실체를 파악하고 미래 잠재 가치를 지닌 생물자원을 발굴하려는 차원에서다. 이를 위해 자원관 주도로 매년 관련 학과 교수 및 연구자 200여 명과 함께 예산 60여억 원을 투입해 작업을 하지만 목표 달성은 쉽지 않은 상태다.

자원관 김창무 연구관은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2020년까지는 5만5000∼5만6000종의 기록 작업을 마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남북관계 경색으로 북한 지역 생물자원 조사 및 발굴 작업을 할 수 없는 게 가장 큰 아쉬움”이라면서 “이것도 목표를 달성할 수 없게 한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덧붙였다.

멸종위기종을 법으로 정해 보호하는 것도 생물 다양성 확보 차원이다. 2012년 마지막으로 지정된 멸종위기종은 모두 246종으로, 이 중 동물이 166종이고 식물이 80종이다. 산업화 이후 각종 오염과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 때문에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멸종위기종은 서식지에서 반출하는 것을 엄격히 금한다. 다만 서식지 바깥에서 보전할 필요가 있는 경우 동물원이나 식물원, 수목원, 곤충관 등을 대상으로 환경부가 관리 능력을 평가해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한다. 2000년 4월 서울대공원이 최초로 지정된 이래 현재 25개 기관이 등록돼 있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는 2005년 곤충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지정됐다.

윤영호 전문기자 yyou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