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이사
호주를 떠나기 전 꼭 알아둬야겠다고 생각한 몇 마디가 있다. 특히 나는 매콤한 음식을 못 먹어서 “맵습니까?”와 “못 먹겠습니다”라는 말을 익혔다. 하지만 한국에 와보니 이런 표현을 써 봤자 소용없었다. 차라리 매운 음식에 적응하는 편이 나았다.
비행기 안에서 여행 가이드북을 통해 한글 습득을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일찌감치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어설프게 소리 내어 읽을 수는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와 달리 처음부터 정확한 발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유럽이나 호주 미국 캐나다 같은 나라는 오래전부터 이민자, 유학생, 여행자가 많아 현지인들은 이미 외국인들의 엉터리 발음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택시를 타고 신촌역을 “씬촌역”이나 “신존약” 또는 “신쫀욕”이라 말하면 영 못 알아들었다. 심지어 신촌역과 이름이 유사한 신천역도 존재하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외국인이 자기도 모르게 신촌역 대신 서울시의 엉뚱한 동남쪽에 가고 말았는지….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에게 많은 한국 사람이 “어렵죠?”라고 묻는다. 어렵긴 하다. 하지만 어느 언어라고 쉬운 게 있을까. 특히 영어권에서 온 외국인은 더욱 힘들 수 있는데 그것은 한국어를 잘 못하고 영어만 쓰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인들이 관대하게 대해 주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외국인을 보면 자신이 꼭 영어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는 듯하다. 외국인을 만나기만 하면 어떻게든 영어로 말하려고 애를 쓰는 한국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서 외국인이 서툰 한국말을 연습하고자 해도 답은 영어로 올 때가 많다.
한국에서 보낸 시간에 비해 나의 한국어 실력이 그렇게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어를 배우는 데 얼마나 걸렸느냐”는 질문에 보통 “여전히 배우는 중”이라 답한다. 또다시 “유창하게 될 때까지 얼마나 걸렸느냐”라고 물어보면 나는 “아직까지 그 정도는 아니다”라고 대답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이 다 표현이 안 된다”고 덧붙인다. 단지 겸손하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의 한계를 매일 새삼스레 인식하고 명심하는 것이다.
여전히 쉽지 않은 것은 듣기이다. 특히 방송 뉴스에는 한자가 많이 나오는데, 내가 보기에는 외국 뉴스 앵커들에 비해 한국 뉴스 앵커들은 자연스럽지 못한 속도, 억양, 목소리로 낭독한다. 영어나 네덜란드 뉴스에서는 회화체를 좀 더 사용하는 편이다.
옛날에 한 외국인 친구가 내게 TV 드라마를 많이 보라고 권했다. 청취력과 이해력을 향상시킬 수 있고, 한국문화도 보다 잘 파악할 수 있게끔 말이다. 그래서 몇 년 전 대학원에 다닐 때 아침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는데 아내가 비웃었다. 그 드라마가 소위 막장 드라마라고 불리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입양된 자식이 꼭 몇 십 년 후에 자신도 모르게 생부모와 가깝게 살게 되거나, 자동차에 치인 사람이 별 상처가 없거나(주로 붕대 하나만 이마에 감는다), 아니면 극단적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여자 주인공이 착하지만 가난한 애인 대신 돈만 많고 못된 남자와 결혼했다가 후회해 옛사랑을 다시 만난다. 그런데 6개월쯤 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처음에는 이상했지만 드라마를 보는 중에 이해력이 늘었는지 이제는 드라마를 보며 아내와 함께 소리도 지른다.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