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의 백제-신라 정복설은 허구”… 광개토왕릉비 둘러싼 한일 논쟁 등 민족주의 넘어선 고대사 해석 ◇한국 고대사 산책/한국역사연구회 지음/464쪽·2만2000원·역사비평사
중국 지린 성 지안 시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왕릉비’. 비석 전면에 걸쳐 광개토왕의 정복 활동이 기록돼 있다. 동아일보DB
문헌기록이 절대 부족한 고대사는 해석의 여지가 큰 만큼 논란도 많다. 문헌의 빈자리를 고고 유물에 대한 해석으로 메워야 할 때도 많다. 유독 고대사 분야에서 재야사학과 강단사학의 갈등이 불거지는 이유다. 제국주의 침탈 경험이 있는 한국에서 민족주의를 앞세운 재야사학의 공세는 학자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최근 만난 한 고대사 연구자는 “논문을 쓸 때 괜히 식민사학 프레임에 걸려들어 오해를 살까 걱정할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 책 저자들은 민족주의를 악용한 역사왜곡에 대해 과감히 비판한 동시에 학계 스스로 반성해야 할 점도 솔직히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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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영류왕의 굴욕적인 외교를 시정하기 위해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켰다는 주장도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일 수 있다. 여러 대에 걸쳐 고위직에 오른 연개소문 가문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던 영류왕의 시도가 도화선이었다는 얘기다. 저자는 “연개소문의 정변은 자신과 가문의 지속적인 권력 장악을 위해 결행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일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광개토왕릉비 중 신묘년 기사(진하게 표시된 부분). 동아일보DB
이에 대해 저자는 신묘년 기사는 광개토왕 때 형성된 고구려 중심의 천하(天下)관에 따라 만들어진 허구라고 봤다. 비석에 쓰인 구체적인 정복 활동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정복의 명분과 의미를 살리기 위해 일부 기사에서 왜의 세력을 과장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 시기 왜가 한반도 남부를 점령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어떠한 기록이나 고고학적 증거도 발견된 바 없다. 집권자를 빛내기 위한 역사왜곡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백제의 요서 진출도 도마에 올랐다. 백제 전성기인 근초고왕대 중국 요서지방은 물론 산동지방과 일본 규슈까지 진출했다는 학설은 교과서에도 소개됐다. 그러나 저자는 요서 진출은 문헌기록과 정황에 비춰 사실일 가능성이 높지만, 산동이나 규슈 진출은 근거가 전혀 없는 역사왜곡이라고 비판한다. 이와 관련해 “왜곡된 사실이 교과서에 오랫동안 실린 것은 허구를 바로잡아야 할 학자들의 책임”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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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