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적 거점국립대’ 부산대, 전북대, 제주대 총장 좌담회
각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 인재 교육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거점국립대’의 위상과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좌담회가 14일 동아일보사 접견실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전호환 부산대 총장, 허향진 제주대 총장, 이남호 전북대 총장. 이종승 전문기자 urisesang@donga.com
거점국립대 위상 회복 절실
허향진 제주대 총장=거점국립대의 위상이 20, 30년 전에 비해 많이 추락했다. 정치, 경제, 산업, 문화가 수도권에 집중된 영향이다. 정부의 대학 지원이 약화된 것도 원인이다. 거점국립대는 우리 사회 전반적인 대학교육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질과 수준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초 보호학문, 인문, 사범, 예술 분야 학과를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학과의 취업률은 떨어진다. 그렇다고 거점국립대가 이들 학과를 포기할 수 없다. 거점국립대 출신 인재들이 지역의 지자체, 경제, 산업, 문화, 예술 등 전 분야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 여성 인재의 육성과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남호 전북대 총장=대학을 설립 주체의 성격상 크게 국립대와 사립대로 나눌 수 있다. 거점국립대는 지방의 교육을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 지역 균형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수도권 육성 편중 정책 탓에 위상이 변했다. 거점국립대와 사립대와의 또 다른 차이는 자율성이다. 거점국립대는 예산, 인력 충원 등이 정부 통제하에 있어 사립대에 비해 발전 전략이 자유롭지 못하고 순발력이 떨어져 급변하는 시대에 대처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상황을 만들었다. 이처럼 단기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거점국립대가 갖고 있는 다양성을 바탕으로 융합, 통섭을 이룰 수 있는 조건을 지니고 있다. 다양한 유전자를 바탕으로 다양한 유전자 조합을 하듯 기초부터 최첨단 학문까지 보유한 거점국립대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전호환 부산대 총장=대학의 역할은 지식의 축적, 전달, 창출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부산대를 비롯한 거점국립대는 이런 역할을 충실히 했다. 과거 부산대의 많은 학과들은 전국 최상위권에 포진했다. 지금은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학생들이 모두 서울로 간다. 입학 성적이 떨어졌다. 그래도 부산대 출신들은 대기업에서 선호한다. 조선, 화학, 철강, 자동차 등 대기업들의 대부분이 지역에 있다. 지역에 좋은 대학이 있어야 지역이 살고 국가가 산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가장 빠른 길은 교육이다. 대학 구조조정 활성화로 대학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거점국립대의 강점인 연구인력 양성을 잘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펼친다면 거점국립대는 옛날의 위상을 되찾을 것이다.
대학 발전의 자율성 존중해야
이기홍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장=국토 균형 발전, 수도권 집중 완화에 거점국립대의 역할과 책임이 크다. 거점국립대의 발전에 꼭 필요한 법적 제도적 장치는 무엇인가.
이 전북대 총장=‘국립대학 육성을 위한 특례법’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국립대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국가가 부담하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국립대를 지원할 수 있는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지금은 매칭 펀드 수준의 도움밖에 없는데 거점국립대가 지역발전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만큼 지자체의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고등교육 재정투자 10개년 기본계획’을 만들어 거점국립대 재정지원 체계를 확립해 거점국립대의 기반 및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많은 공공기관이 지역에 내려왔지만 지방에 발령을 받으면 사표를 내는 등 수도권 선호 현상은 여전하다. 인재들이 지방을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역인재 채용 할당제’가 강제사항이 돼야 하고 광역경제권에서도 적용돼야 한다. 그래서 수도권과 지방이 서로 상생하는 선순환 사이클이 만들어져야 한다.
허 제주대 총장=대학이 자율적인 발전 방향을 세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학이 예산 지원을 받기 위해 정부가 요구하는 내용으로 발전 방향을 변경하게 돼 재정 지원 사업이 오히려 대학 고유의 발전 목표와 방향을 저해하고 있다. 이는 등록금 책정의 자율성과도 연계된다. 등록금상한제를 준수한다는 전제하에 개별 대학의 발전계획과 연계해 등록금 책정의 자율성을 갖게 해야 한다. 국가장학금, 외부장학금, 교내장학금 등을 학생들이 받는 걸 고려하면 제주대의 경우 등록금의 70%를 장학금으로 지급한다. 학생들에게 직접 주는 국가장학금 4조 원을 학교에 지원해 명목 등록금을 낮춰야 한다.
대학 운영비의 국고 지원 확대가 절실하다. 대학 운영 기본 경비와 운영비가 100% 국고로 지원될 수 있도록 요청한다. 또 각종 세금 규제를 완화하고 면세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재정 지원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공무원 직종 조정의 유연성도 필요하다. 대학 환경의 변화로 취업 및 진로 상담, 학생 인권 보호, 입학사정관 등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행정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나 관련 법령 제약 및 공무원 직종의 채용 한계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아 대학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연구중심대학으로 가고, 모험생 만들고
이 본부장=대학 나름으로 추진 중인 특화된 발전 전략은 무엇인가.
전 부산대 총장=연구중심대학으로 갈 것이다. 5개 학문 분야를 집중 육성한다. 바이오, 사물인터넷(IoT) 및 정보통신기술(ICT), 신소재, 재난안전시스템, 해양자원 분야이다. 한 분야에 1000억 원씩, 총 5000억 원을 투자하려고 한다. 5개 분야를 10년 안에 세계 50∼100위권에 들도록 만들겠다. 현재 부산대는 영국 QS대학 평가의 100∼150위권에 기계·항공, 약학, 화학공학이 들어 있는데 이 분야도 50∼100위권에 들어갈 수 있도록 육성하겠다. 국립대 최초로 노벨과학상 프로젝트인 ‘IBS(기초과학연구원)기후물리연구단’을 유치했는데 이 연구단은 부산대의 기초과학 연구 인프라를 강화해 연구중심대학으로 나아가는 데 일조할 것이다.
허 제주대 총장=외국대학에서 최저 12학점을 따는 국제화 프로그램인 ‘진리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에게 도전의식을 심어 주고 있다. 제주교대를 통합했는데 ‘글로벌 교원양성 거점대학 지원사업’을 통해 교대와 사범대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다. 지역의 4개 대학과 힘을 합쳐 이상적인 연합대학을 만들어 대학발전 전략으로 삼겠다. 이는 지역산업 발전, 우수인재양성 및 기술 개발에 기여할 것이다. 제주한라대, 제주관광대와 연계해 ‘Jeju One Campus’ 프로젝트를 추진해 관광 분야에 특화된 인재를 양성할 계획이다.
거점국립대가 대학교육 중심 역할
이 본부장=이 시점에 꼭 국립대가 필요한가를 묻는 ‘국립대 비판론’, ‘국립대 무용론’도 일각에 존재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반론은 무엇인가.
허 제주대 총장=교육의 공공성 때문에 독일의 경우 100% 국립대학(무상 등록금)이다. 한국은 오히려 사립대에 대한 재정 지원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국립대에 조금 더 지원하고 있지만 통제와 규제를 하고 있다. 사립대는 재단, 총장의 거버넌스를 통한 자율성을 가지면서 정부 지원을 받고 있지만 국립대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질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정부가 지휘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 경쟁력이 약화된다. 앞으로 점점 더 사립대의 정부 지원 요구가 강해지고 커져갈 것이다. 사립대가 반 국립대가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시점에서 국립대 무용론을 얘기하는 것은 이상하다.
이 전북대 총장=국립대가 필요한 3가지 이유를 들겠다. 첫째, 국립대는 저렴한 학비로 교육을 시켜 교육기회를 균등 실현하고 있다. 정부가 등록금을 강력히 규제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국립대의 등록금은 사립대에 비해 훨씬 싸다. 둘째, 국립대는 지역 발전에 필요한 인재를 공급해 지역 균형 발전을 가능케 한다. 전라북도의 경우 탄소 및 농생명 산업을 핵심 성장발전전략으로 갖고 있는데 전북대가 이 비전의 실현에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 국립대가 아니면 어떤 대학들이 관심을 갖겠는가. 셋째, 국립대는 기초학문, 보호학문, 돈은 많이 들어가지만 투자 대비 아웃풋이 없는 학문을 가르쳐 교육의 중심을 잡고 있다. 인기 없으면 바로 없애는 사립대와 대비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도전정신과 기본이 중요
이 본부장=4차 산업혁명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거점국립대의 강점은 무엇인가.
이 전북대 총장=4차 산업혁명은 초불확실성의 시대다.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들다. 요즘 젊은이들은 직업의 라이프 사이클이 짧아지는 가운데 평생 직업을 6번 바꾼다는 예측도 있다. 이런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모범적 달성보다도 유연한 사고, 능동적 해결 능력, 협업이 중요하다. 대학 다닐 때 무한도전을 경험하게 해 모험적인 인재로 길러내는 게 중요하다. 전북대는 모험적인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다양성이 강점이다.
전 부산대 총장=4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연결과 융합이다. 이 시대는 지식과 자본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플랫폼이 돈을 번다. 부산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커뮤니케이션 기술, 융합 능력, 문제해결 능력과 학습 능력을 강조한다. 단일 대학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시카고대의 힘은 고전 100권을 읽게 하는 허치슨 플랜 덕이다. 부산대도 고전 50권 읽기, 소프트웨어 교육 강화 등을 통해 기본을 강조하고 있다.
허 제주대 총장=속도와 융·복합이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이다. 제주대는 학생들의 문제해결 능력, 학습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평생책임 지도교수제를 통해 학생들에게 지속적인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교육을 하겠다. 학칙을 개정해 연계 입학 전공, 학생 설계 전공, 1년 4학기의 유연학기제 도입을 통해 학생 스스로 학습 설계를 하고 교수들은 이를 뒷받침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인재를 육성하겠다.
이종승 전문기자 urises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