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연극 ‘심청’
제물로 팔려온 간난(가운데)이 바다에 빠져 죽기싫다며 목 놓아 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선주(오른쪽)와 셋째 아들. 극단 떼아뜨르 봄날 제공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 중인 ‘심청’은 사전 정보 없이 관람하더라도, 죽음을 관념이 아니라 실재적으로 고민한 노작가의 연륜이 담긴 작품임을 직감할 수 있다. 이강백 극작가(70)는 삶과 죽음을 마디마디 곱씹은 후 이를 묵직하게 투영했다.
맹수 같은 파도를 달래기 위해 출항할 때마다 처녀들을 제물로 바쳐온 선주(송흥진)는 겉보리 스무 가마에 팔려온 간난(정새별)을 지극정성으로 모시지만, 간난은 왜 죽어야 하느냐며 제물 되기를 거부한다. 깊은 병이 들어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 선주는 온 힘을 다해 죽음을 거부하는 간난을 보며 마음이 흔들린다. 간난이 자기 이름 석 자를 배워 써보고 기뻐하며 생의 마지막 순간을 환희로 채워가는 동안 선주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짓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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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우울하지 않다. 당돌하고 솔직한 간난과 선주 자리를 물려받기 위해 간난을 설득할 묘안을 짜내는 세 아들(이길, 신안진, 윤대홍)은 웃음을 자아낸다. 죽음이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살아 있는 이들은 또 이렇게 산다. 이수인 연출가는 여백을 둔 공간 구성과 서정적인 연주, 마임(이두성)의 정갈한 동작으로 메시지를 단아하게 증폭시킨다. 놓치지 말아야 할 공연 목록에 넣고 싶은 작품이다. ★★★★(★5개 만점). 19일까지, 3만 원. 02-742-7563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