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터키 개헌집회 잇달아 불허 양국 갈등 격화… 일각선 단교 주장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사진)은 5일 이스탄불에서 열린 개헌 찬성 집회에서 독일을 나치에 비유하며 이렇게 독설을 쏟아냈다. 터키 정부가 다음 달 16일 치를 대통령제로의 개헌 국민투표를 앞두고 장관들을 동원해 독일 거주 150만 터키인 유권자에게 찬성 독려 유세를 벌이려 했는데 독일이 이를 불허한 데 따른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나치 시대가 과거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터키가 지난달 말 독일 신문 디벨트의 터키 특파원 데니즈 위젤을 테러 선전 혐의로 구속한 이후 양국은 극한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터키와 독일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이고, 독일은 유럽연합(EU) 중 터키의 최대 교역국이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달 2일 정상회담을 한 지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독일 일각에서는 단교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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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가 독일의 아픈 과거인 나치까지 들먹이며 비난 강도를 높이는 건 그만큼 이번 개헌 국민투표에 정권의 운명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번 개헌안은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바꾸고 장관·법관 임명권과 국회 해산권, 예산 편성권 등 막강한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결된다면 독재자라는 국내외 비판 여론에 시달려 온 에르도안의 통치 정당성이 취약해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투표를 앞두고 독일을 외부의 적으로 상정해 국내 결집력을 강화하려는 선거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터키는 장관들을 독일로 보내 교민을 상대로 연설을 계획할 만큼 이번 개헌안 통과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양국 관계 악화로 여의치 않은 처지다. 2일 독일 가게나우에서 예정된 터키인의 대규모 개헌 찬성 집회에서 베키르 보즈다으 터키 법무장관이 참석해 연설할 계획이었지만, 가게나우 당국이 장소가 협소하다며 집회를 불허하면서 무산됐다. 쾰른 당국도 당초 터키 법무·외교장관의 연설이 예정된 집회를 안전상의 이유로 취소시켰다. 잇따른 불허에 니하트 제이베크지 터키 경제장관은 5일 쾰른의 호텔에서 열린 정의개발당(AKP) 지지자 모임에서 300여 명을 상대로 연설하는 궁여지책을 쓰기도 했다.
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