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진·산업부
퀄컴은 21일 한국 법원에 공정위의 행정처분에 불복하는 소송을 냈다. 그즈음 돈 로젠버그 퀄컴 법무총괄은 블룸버그와 인터뷰를 가졌다. 여기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를 받고 있는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과 삼성의 유착 의혹이 언급됐다. 그동안 공정위 처분의 절차적 타당성만 문제 삼던 퀄컴이 공격 포인트를 또 하나 늘린 것이다.
특검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과 관련해 공정위가 삼성에 특혜를 줬는지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라 삼성은 이 합병으로 인해 강화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해야 했다. 공정위가 처분해야 할 지분 규모를 의도적으로 낮춰 삼성의 부담을 줄여줬다는 게 특검의 주장이다.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백번 양보해 이것이 사실이더라도 퀄컴에 특허 로열티를 내는 삼성전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를 모를 리 없는 퀄컴이 언론을 통해 피해자인 양 나선 것은 국내 정치 상황을 이용한 교묘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광고 로드중
정치인들의 잇단 ‘재벌 개혁’ 발언과 특검 수사로 국내 대기업들은 국내외에 ‘부패 집단’으로 낙인 찍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구속되면서 이런 인식은 더 커졌다. 공정위와 보건복지부 등 특검 수사 대상에 오른 정부 부처들의 신뢰도도 이미 바닥에 떨어졌다.
재계에서는 퀄컴이 이런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들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소송에서 이길 경우 미국, 유럽연합(EU), 대만 등 세계 각국에서 제기된 특허 남용 조사에서 조금은 유리해질 수 있어서다.
퀄컴의 이런 움직임은 최순실 사태에 연루된 기업들이 단순한 이미지 타격을 넘어 법적 분쟁에서도 발목이 잡힐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청문회에 불려나와 망신을 당하고, 포승줄에 묶인 채 검찰에 수시로 소환되는 총수의 사진은 경쟁자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 기업인들의 혐의가 확정되기도 전에 그런 빌미부터 내주는 현실이 안타깝다.
신동진기자 shi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