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세계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10을 취재하면 그 중 2, 3만 기사로 쓴다. 취재할 때에는 최대한 깊고 폭넓게 하고 그 중 엄선된 내용만 기사에 담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유독 애착이 가는 취재원, 현장이지만 기사 주제와 거리가 있어, 분량이 넘쳐서 지면에 담지 못한 ‘B급’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노인이 많아서 참 ‘큰일’이라고 합니다. 일할 사람은 감소하는데 노인은 자꾸 늘고 있으니까요. 30대 초반인 저를 포함한 젊은 세대의 어깨는 더 무거워질 테죠. 그 무게를 수치로 나타낸 게 ‘노인부양비’인데 2015년 기준 17.5명인 노인부양비는 2065년 88.6명으로 늘어납니다. 지금은 젊은 세대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지만 2065년이면 젊은 세대 1명이 노인 1명을 책임져야 하는 거죠.
노인 관련 이슈는 세대 갈등으로 쉽게 번집니다. ‘노인연금 늦게 주려 밑밥까네’ ‘연금 늦게 주려고 별걸 다 조사한다…약속한 날짜에 내놔’ 13일 동아일보가 보도한 ‘70세 노인 시대를 묻다’ 시리즈 상편 인터넷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입니다. 댓글을 하나씩 곱씹다보니 ‘인간은 아버지의 원수보다 재산을 뺏은 자를 더 오래 기억한다’는 마키아벨리의 통찰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우리 세대는 다 자식들한테 ‘올인’했거든. 이렇게 오래 살 줄 아무도 몰랐어.” 취재하면서 만난 한 어르신의 이야기입니다. 1952년생인 그는 그의 부모가 그랬듯 두 자녀를 키우는 데 모든 걸 쏟아부었습니다. 자녀들을 유학 시집 장가 보내느라 노후 대비를 못 했다고 합니다. “은퇴하고 나니 남은 건 집 한 채와 매달 들어오는 연금 80만 원이 전부야.”
그때는 다들 그랬습니다. 자식 잘 키우고 내 집 하나 장만하는 게 꿈이자 유일한 노후 대비였으니까요. 가장 기본적인 노후 대비 수단인 국민연금조차 1988년 생겼습니다.
준비 없이 ‘100세 시대’를 살아야 하니 너무 막막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여기가 골인지점인 줄 알고 전력 질주했는데 골인하고 나니깐 앞으로 가야 할 거리가 한참 남은 거야. 체력은 바닥인데 골인지점은 보이지 않으니 너무 힘들지. 그런데 그 고통은 각자 달라. 누구는 자가용 타고 가고 누구는 버스타고 누구는 맨발로 가야 하니깐….” 이렇게 말한 어르신은 연금만으로 생활이 어려워 택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다시 30대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노후를 준비할지 물었습니다. “자식 뒷바라지하는 데 쏟아붓지 않을거야. 필요한 만큼만 해주고 내 노후 자금으로 써야지.”
연금을 먹고 살만큼 올리거나 급여가 괜찮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 노인의 팍팍한 삶은 달라질 겁니다. 문제는 예산, 일자리 모두 한정돼 있다는 거죠. 무작정 퍼줄 수 없으니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쓸지 따지고 고민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또 인구 10명 중 4명이 노인이 되는 시대에 대비해 노동, 교육, 복지 등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이게 노인 연령 기준을 올리자는 논의가 나온 배경입니다.
“노인은 지금 일하는 세대의 미래입니다.” 인구학 권위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의 표현입니다. 달라진 미래를 사는 건 지금 노인, 장년층이 아니라 한창 일하는 세대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노인에게 이로운 건 나에겐 불리하다’는 공식으로 찬반을 정할 게 아니라 ‘지금의 나’와 ‘30, 40년 후의 나’에게 뭐가 더 이로운 지 냉철하게 따져야 할 겁니다. 가령 정년 없이 늦게까지 일하고 싶다면, 지금 누리는 연공서열제의 혜택을 포기해야 할 겁니다. 정규직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연금만으로 노후 생활이 가능하길 원한다면 소득의 9%인 연금요율을 올리고 연금을 더 내야 할 겁니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르는 법이니까요.
취재 마지막 날 은퇴한 어느 60대 남성과 술자리를 했습니다. 공기업에 다닌 그는 올해부터 연금으로 120만 원을 받습니다. 50대 이상 부부의 적정생활비(237만 원)보다 100만 원 적지만 연금 수급자 중에서는 꽤 많이 받는 편입니다. 나름 전문성이 있는 업무를 맡았던 그는 전문성을 살려 은퇴 후에도 재취업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써주겠다는 곳은 아파트 경비. 빌딩 주차장 관리, 주유원 정도인 현실이 너무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이 분은 제 아버지입니다. 제 또래 부모님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30년 후 다시 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마지막 잔을 무겁게 비웠습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