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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장택동]법치주의 위기 부추기는 정치권

입력 | 2017-02-14 03:00:00


장택동 정치부 차장

최근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모임에 다녀온 한 지인은 “무서웠다”고 평가했다. “참석자들의 눈빛을 보니 헌법재판소가 탄핵안 인용 결정을 하면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탄핵 찬성 측의 결기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경기도의 집에서 두 시간 가까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와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다는 한 친구는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 같다. ‘이상한 결정’을 하면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느냐”고 의지를 불태웠다.

헌재의 박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이 다가오면서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다. 벌써부터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갈등이 다시 불붙는다면 탄핵 이전보다 양상이 과격해질 수 있다.

더 걱정되는 것은 법치주의의 위기다. 대법원 판결과 헌재의 결정은 최종심(最終審)이다. 말 그대로 마지막 결정이다. 1, 2심 선고에 대해선 상소할 수 있고 결과가 바뀔 수도 있지만 최종심 결정은 다르다. 재판 과정에서 중대한 위법이 있었던 경우 등 극히 예외적으로 최종심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고 수십 명의 변호사가 참여하는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이렇게 큰 결함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결국 헌재의 결정은 거부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헌재 결정에 영향을 미치거나 결과에 불복하는 것을 부추기려는 듯한 언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본다.

헌재 결정을 수용하지 않을 합법적 방법은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물리력이라도 이용하라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법치주의는 치명적 타격을 입는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법치주의를 어겼다는 이유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법치에 둔감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유감이다.

자유한국당 김문수 비상대책위원은 13일 “태극기집회에 계속 가야 오히려 헌재의 판결을 공정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논리로 보이는데 정치 지도자가 할 말인지 의아하다.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중 한 명인 자유한국당 조원진 의원은 11일 ‘태극기집회’에서 무대에 올라 “헌재가 졸속 심판을 하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협박으로 들릴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다.

야당의 태도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11일 “탄핵을 기각한다면 그들(헌법재판관)까지도 탄핵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위협했다. 야당 지도부는 지난 주말 촛불집회부터 다시 조직적으로 참석하고 있다. 탄핵소추안 의결을 위해 촛불집회에 동참한 것과 헌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의미가 전혀 다르다는 점을 외면하는 듯하다. 한술 더 떠 바른정당은 12일 탄핵이 기각되면 의원직을 총사퇴하겠다고 밝혔다. 헌재의 시각에서는 심각한 압박이다.

이런 와중에 13일 여야 4당 원내대표가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겠다고 합의한 것은 다행스럽다. 그들이 진심으로 합의를 한 것인지, 아니면 ‘립 서비스’를 한 것인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일이다.

지난해 분출된 민심은 폭력 없이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의해 수렴됐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컸다. 법에 정해진 대로 국회는 탄핵소추안을 의결했고, 헌재는 심판을 진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제 판단은 헌재에 맡기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어렵게 지켜온 법치주의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장택동 정치부 차장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