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후/마이클 테너슨 지음·이한음 옮김/408쪽·2만 원·쌤앤파커스
인류는 진화를 거듭하며 최근 20만 년간 지구의 지배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지구에 동물이 출현한 6억 년 동안 각 시대의 지배자들은 ‘대량 멸종’을 겪으며 지금은 모두 화석으로만 남아 있다. 쌤앤파커스 제공
그렇다면 인류의 운명은 무엇일까. 결국 무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선뜻 이 물음에 답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인류가 결국 멸종한다는 것이 상식으로 여겨지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인류(호모 사피엔스)는 결국 없어질 운명이라고.
우선 저자는 미국 텍사스 주의 가장 높은 산맥인 과달루페 국립공원에서 찾아낸 ‘캐피탄 리프’ 화석을 통해 그동안 지구를 지배했던 종족의 멸종사를 설명한다. 동물이 지구에 처음 출연한 것은 6억 년 전이다. 이 기간에 동식물 종의 75%가 사라지는 ‘대량 멸종’ 사태는 총 5번 발생했다. 시베리아 화산 분출이 만들어 낸 2억5200만 년 전 ‘페름기 사건’부터 소행성 충돌로 생긴 6500만 년 전 ‘백악기 사건’까지. 영원할 것 같던 지배자들은 지금 모두 화석으로만 남아 있다.
‘문명을 이룩한 인간은 다를 것이다.’ 문득 책을 읽다 보면 떠오르는 생각이다. 그러나 저자는 인류의 ‘황폐화 능력’에 주목한다. 호주 대륙에 인류가 들어간 것은 고작 4만 년 전이지만 이 사이 대형 포유동물 85% 이상이 멸종했다. 조류독감 에볼라 중동호흡기증후군 등 수억 년 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치명적인 질병이 인간의 번성 이후 생겨났다.
오히려 인류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모든 동식물에 이롭다. 2011년 대지진 이후 발생한 원전 사고로 인해 버려진 땅이 된 일본의 후쿠시마. 인간이 살지 못하는 땅이 됐지만 이제는 야생 동물의 천국이 됐다. 총 폭탄 방사성폐기물 등 자연을 파괴한다고 여겨진 수많은 요소보다 더 큰 해를 끼친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래도 발전하는 과학에 답이 있겠지…”라는 희망 역시 뭉개 버린다. 화성 탐사나 인공 지능(AI)은 엄청난 예산과 관심을 투입해야 하지만 현 인류가 대안으로 내세우기에는 발전 단계가 너무 낮다고 일축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