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공개수배 전단의 모든 것
1일 서울 마포구 마포경찰서 강력계 형사들이 2017년 상반기 중요 지명피의자 종합 공개수배 전단을 살펴보고 있다. 마포서 형사들은 전단의 수배자 얼굴을 보며 검거 의지를 다진다. 한 형사는 “범인이 잡히면 전단 위에 검거 도장을 쾅 하고 찍었는데 그 쾌감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도장 대신 검거 스티커를 붙인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지난해 7월 11일 걸려 온 112 신고 내용이다. 전북 남원시에 사는 신고자는 단골손님 중 한 명이 수배 전단 속 살인 용의자 유모 씨(61)와 닮았다고 말했다. 경찰청 중요 지명피의자 종합 공개수배 전단에는 유 씨의 사진과 ‘신장 170cm. 보통 체격. 전라도 말씨’라는 설명이 있다.
경찰은 신고 접수 4일 만에 유 씨를 검거했다. 그는 2014년 10월 광주 자신의 아파트에서 아내(당시 56세)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수배된 상태. 사건 발생 당일 그는 “아내가 화장실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 같다”라고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이 시신 가슴 부위에서 멍을 발견하고 부검을 하려 하자 장례도 치르지 않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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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형사’ 뺨치는 종합 수배 전단
그렇다고 아무 수배자나 종합 수배 전단에 이름을 올릴 수는 없다. 지난해 12월 기준 지명수배는 3만1369건이다. 매년 상, 하반기 각 지방경찰청은 지명수배 후 6개월 이상 잡히지 않은 수배자를 경찰청에 보고한다. 경찰청은 5월과 11월 변호사, 성형외과 전문의 등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공개수배위원회를 열고 최종 20명을 선정한다. 경쟁률로 환산하면 무려 1568 대 1이다. 경찰 관계자는 “살인 강간 등 강력범, 고액·다수 피해 경제사범 등 범죄가 중대하고 추가 피해 우려가 있는 수배자를 우선 선정한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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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으로 찾고 SNS로 검거
아파트 재건축 조합장 S 씨(48)는 조합 통장에 손을 댔다. 2008년 9월부터 2009년 1월까지 미분양 청산금 5억 원과 피해 보상금 1억5000만 원을 합쳐 6억5000만 원을 횡령하고 잠적했다. 경찰은 S 씨를 출국금지하고 행방을 쫓았지만 단서가 잡히지 않았다. 5년 넘게 행방이 오리무중이고 추가 피해마저 우려되자 경찰은 2014년 7월 종합 수배 전단에 S 씨를 올렸다.
두 달 뒤 한 시민은 지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둘러보던 중 사진 속 한 남자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명 어디서 본 듯한 낯익은 얼굴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종합 수배 전단에서 본 S 씨였다. S 씨는 완벽히 경찰의 추적을 따돌렸다고 생각하고 지인과 사진을 찍었지만 그를 지켜보는 수많은 눈을 피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강한 호기심을 갖고 수배자 사진을 관찰하거나 얼굴 정보 처리 능력이 발달한 사람이 수배자를 알아볼 확률이 높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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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수배 전단은 ‘어둠의 세계’에서도 꽤 인기가 있다. 범죄 조직원과 전과자들은 종합 수배 전단이 배포되면 습관적으로, 또는 필요에 따라 찾아본다고 한다. 만약 아는 얼굴이 있으면 경찰에 신고한다는 것이다. 이권 싸움에서 밀린 조직원들이 특히 열심이라고 한다. 서울의 한 경찰서 과학수사요원은 “첨단 과학수사 기법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수배자의 은신처를 시민이 전단을 보고 신고해 파악하기도 한다”라며 “정확한 위치까지는 아니어도 주변 폐쇄회로(CC)TV를 탐문하면 검거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수배자를 쫓는 누군가의 시선
종합 수배 전단에 올라간 수배자는 항상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자수하는 수배자도 많다.
2008년 2월 L 씨(41)는 서울 중심가 증권회사 지점에서 일하다가 고객 돈 40억 원을 빼돌리고 사라졌다. 횡령한 돈을 주식 투자와 유흥비로 쓰고 화려하게 생활했다. 하지만 2010년 하반기 종합 수배 전단에서 자신의 얼굴을 발견했다. 이후 곧 잡힐 것이란 불안감에 시달리다 결국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12월 말 자수했다.
가족이 자수를 권유하는 일도 있다. 2008년 11월 K 씨(29)는 교통경찰의 검문을 거부한 채 그를 그대로 치고 달아났다. 피해 경찰은 크게 다쳤다. 경찰은 장기 도피 중인 K 씨를 잡기 위해 2012년 하반기 공개 수배에 나섰다. 종합 수배 전단을 본 K 씨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수를 권유했다. 결국 K 씨는 아버지와 함께 경찰서를 찾았다. 한 고참 형사는 “수배자의 자수를 유도하는 것이 종합 수배 전단의 가장 큰 힘”이라며 “경찰력도 아낄 수 있어 형사들에게 고마운 존재”라고 전했다.
범인 잡는 종합 수배 전단의 활약이 입소문을 타면서 먼저 찾는 곳도 많다. 주로 낚시터와 여인숙 고시원 유흥주점 노래방 주인들이다. 마치 귀신을 쫓는 부적같이 범죄 예방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제복 입은 경찰관이 1년에 2번 전단을 붙이러 오고, 수시로 훼손 여부를 확인하는 등 실제 경찰의 발길도 잦아진다.
경찰도 종합 수배 전단의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단 크기를 1종류에서 2종류로 다양화했다. 큰 것은 크기가 가로 42cm 세로 59cm, 작은 것은 가로 33cm 세로 48.5cm다. 2015년 1월부터는 스마트국민제보 애플리케이션인 ‘목격자를 찾습니다’에도 전단을 올렸다.
강일구 경찰청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운영계장은 “지명수배 기간에 따라 언제쯤 공개 수배하는 것이 검거할 가능성이 높은지, 어떤 장소가 효과적인지 분석해 검거율을 계속 높이겠다”라고 밝혔다.
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