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증인 모욕 주는 국회…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특검… ‘도덕적 재판관’ 착각한 듯 ‘7시간’부터 풍자 누드까지… 본질 비켜난 여성혐오로 변질 이것이 표현의 자유라 강변하면 문화계는 국민 신뢰 잃을 것
박정자 객원논설위원 상명대 명예교수
복수의 일념으로 가득 차 무엇엔가 심하게 쫓기는 듯한 특검팀 검사들의 위세도 위태로워 보인다. 법을 다루는 직업인인데 마치 도덕적 재판관이라도 된 듯 ‘경제보다 정의가 우선’이라느니 하면서 ‘정의의 사도’를 자칭한다. 영어로 정의와 사법이 똑같은 것(justice)을 보고 사법이 곧 정의인 줄 착각하고 있나 보다.
도주 우려가 전혀 없고 아직 무슨 죄가 있는지도 불분명한 고위 공직자나 교수들을 마구 구속하면서 온 국민이 여태껏 들어보지 못했던 ‘항문검사’라는 말을 슬쩍 언론에 흘린 것도 ‘정의’를 위해서인가? 피의자는 보통 영장실질심사가 나오기까지 검찰청이나 인근 경찰서에서 사복 차림으로 기다리는 것이 관례인데 이들은 예외적으로 서울구치소에서 수의를 입고 대기했다는 것, 그리고 항문검사도 받았다는 것을 온 국민이 인지하게 됐다. ‘이쁜 여동생’이니, ‘울고불고’라느니 하는 어느 국회의원의 단어 구사에서는 예쁘고 머리 좋고 잘나가던 한 여성에 대한 천박한 복수심이 느껴진다. 이건 일종의 ‘사회적 성폭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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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행되는 대통령에 대한 성적 비하는 어느 문명국에서도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세월호 7시간 공백의 논란은 밀회설로 시작되었다. 이것부터가 여성 차별이다. 남자는 혼자 있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여자는 혼자 있으면 의심받아야 하는가? 상대 남성의 알리바이가 밝혀져 한숨 돌리는가 싶더니 이번엔 굿을 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공적 언론기관들을 통해 무차별 살포되었다. 섹스와 무속(巫俗)은 전형적인 여성 차별의 표상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근대 니체에 이르기까지 여자는 동물에 가까운 열등한 존재로 여겨졌다. 씨 뿌리고, 수확하고, 파괴하고, 건설하고, 생각하고, 창조하는 것이 남자라면, 여자는 오로지 자궁으로만 환원되었다. 자연과 가깝기 때문에 모든 여성은 자연의 비밀과 교유할 수 있는 존재로 생각되었다.
중세 때 마녀는 그렇게 탄생했다. 기독교 사상도 여성에게 육욕의 죄를 씌움으로써 중세기 성직자들의 여성 혐오증에 길을 열어 주었다. 여성 혐오에 그토록 민감한 현대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단 한마디 코멘트가 없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표창원 의원이 기획해 의원회관에 걸렸던 대통령의 나체 풍자그림 ‘더러운 잠’은 19세기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것이다. 마네 자신은 16세기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패러디한 것이고,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또한 15세기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를 패러디한 것이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빛에 의한 음영(陰影)과 색조의 농담(濃淡)을 통한 인체의 볼륨감을 인위적으로 파괴함으로써 르네상스 이후 400년간 회화 기법이었던 원근법을 폐기한 것으로 유명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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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 객원논설위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