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건보료 개편안]
《 9550만 건. 지난해 국민건강공단에 제기된 건강보험료 관련 민원 건수다. 수많은 퇴직자가 “지역가입자가 되니 건보료가 2배 올랐다”고 항의한다. 2014년에는 단칸방 보증금, 월세 등이 소득으로 평가돼 월 5만 원의 건보료를 내 온 송파 세 모녀가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직장가입자(1581만 가구)는 근로소득을 중심으로, 지역가입자(757만 가구)는 성, 연령, 재산, 자동차 등을 평가소득으로 추정해 건보료를 내는 이중적 부과체계 탓이다. 정부가 △평가소득 보험료 17년 만에 폐지 △최저 보험료 3590원→1만3100원 인상 △연소득 3400만 원 초과 시 피부양자 제외 △보수 외 소득 3400만 원 초과 시 보험료 추가 등을 골자로 한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발표한 이유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개편안을 사례로 분석했다. 》
현재 부과체계대로라면 월세 50만 원의 단칸방에 자녀 2명과 사는 김모 씨는 소득이 없는데도 월세방에 따른 재산보험료 1만2000원과 성별, 나이 등 평가소득에 따른 소득보험료 3만6000원을 합쳐 매월 4만8000원을 내야 한다.
최저 보험료 적용 대상이 아닌 지역가입자는 소득, 자동차, 재산 등을 기반으로 보험료가 결정된다. 단 재산, 자동차 보험료는 서서히 감소된다. 최모 씨는 연간 1500만 원가량을 벌며 4000만 원 내외의 전셋집, 소형 승용차(1600cc 이하)를 갖고 있다.
그는 현재 전셋집에 따른 재산보험료 1만2000원, 평가소득에 따른 소득보험료 6만3000원, 자동차보험료 4000원 등 월 총 7만9000원의 보험료를 낸다. 개정안이 적용되면 전세보증금 4000만 원 이하, 자동차 배기량 1600cc 이하는 건보료가 면제돼 최 씨는 소득보험료 1만8000원만 내면 된다. 복지부는 “다만 4000만 원 이상 고가 자동차 소유자는 보험료를 내야 한다. 재정 부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퇴직한 정모 씨는 연금소득이 연 3413만 원에 달한다. 시가 7억 원인 부동산도 보유했다. 하지만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보료를 내지 않았다. 금융소득, 공적연금, 근로, 기타 소득 중 어느 하나가 4000만 원을 초과해야 지역가입자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 개편안에 따라 종합과세소득 합산 금액이 연 3400만 원이 넘으면 피부양자에서 탈락해 재산보험료 12만2000원, 소득보험료 9만1000원 등 월 21만3000원을 내야 한다.
대기업 과장 장모 씨의 연 급여는 3540만 원. 그는 금융 임대 등 급여 외 소득으로 연간 6861만 원을 번다. 현재 그는 보수 외 소득이 연 7200만 원을 넘지 않아 보수보험료(월 4만5000원)만 냈다.
정부안에 따르면 보수 외 소득 부과 기준이 3400만 원으로 낮아져 장 씨는 보수 외 소득보험료 17만7000원을 더해 월 22만2000원을 내야 한다. 직장인만 건보료 부담이 가중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복지부는 재산이 많은 직장인 26만 가구에만 해당될 뿐 나머지 직장인(1555만 가구)의 보험료에는 변동이 없다고 밝혔다.
부과 체계 개편으로 △1단계 9089억 원 △2단계 1조8407억 원 △3단계 2조3108억 원의 재정 손실이 예상된다. 고소득 피부양자, 부자 직장인 보험료를 높여도 지역가입자의 보험료가 감소해 재정 적자를 막을 수 없다.
반면 건보료 부과를 단계별로 소득 중심으로 전환하려 해도 지역가입자 소득을 파악할 방법과 여건이 부실하다. 더구나 현재 안은 말 그대로 정부안이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은 피부양자, 지역-직장가입자 구분을 폐지하고 모든 소득에 건보료를 부과하는 개편안을 내놓았다. 야당 집권 시 또 다른 정부안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