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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최우열]박근혜의 선례

입력 | 2017-01-20 03:00:00


최우열 사회부 기자

 “정부 출범 초부터 사고 날 가능성이 있어 유심히 ‘워치’했다. 형님은 집 앞 경찰 초소에서까지 감시 아닌 감시를 당해 인권 유린 얘기가 나온 적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듯이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2009년 3월 말 법무법인 부산으로 찾아온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서 검찰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를 구속한 뒤였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비서실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항변과 자책이 뒤섞여 있었다.

 이런 과거는 문 전 대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순실을 감시 못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직무유기라면 문재인 전 민정수석도 직무유기다”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을 ‘통제’하지 못한 MB 정부 민정수석들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지원금 편향 논란도 비슷하다. 노무현 정부 때 종합 일간지의 정부 광고 수주 건수는 서울신문 한겨레 경향 순이었고, 동아일보 조선일보는 하위권이었다.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 보조금 역시 좌파 단체에 몰렸고, 반대로 MB 정부가 들어서자 우파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 보조금은 급증했다.

 이런 선례를 들어 “노무현 정부 땐 아무런 ‘리스트’ 없이 저절로 돈이 좌파 단체로 갔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얼마 전 만난 한 경찰 간부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면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것 아니냐. 기각은 정말 끔찍한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부터 계속된 촛불집회에 대응하느라 석 달째 주말근무를 해온 사람의 푸념일 게다. 그러나 “헌재에서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밖에 없다”고 말한 것은 문 전 대표만이 아니다. 탄핵 찬성 진영과 반대 진영은 각각 “기각되면 헌재로 몰려가자” “인용되면 헌재로 쳐들어가자”는 말을 공공연히 쓰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담당 판사를 파면하라는 주장이 인터넷에 오르고, 반대로 담당 판사를 영웅시하는 댓글이 쏟아지는 것도 비슷한 일이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헌법이 아닌 폭동을 쉽게 떠올리게 됐는지 모르겠다. 국가와 사회 모든 갈등의 최종 심판자인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조차도 폭력으로 뒤집어야 한다는 생각이 어떻게 이처럼 퍼지고 있는지도 고민해 볼 일이다. 탄핵 찬반 진영은 자신들의 주장이 헌법 수호를 위한 저항권 행사라고 말하지만 ‘탄핵 인용 후 조기 대선’이나 ‘탄핵 기각 후 12월 대선’이나 다 헌법에 따른 것일 뿐이다. 자기들 주장만이 헌법을 수호하는 유일한 길은 아닌 것이다.

 이전 정부 민정수석의 과거와 정부 보조금 배분의 사례들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것처럼, 헌재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주장만 고집한다면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박근혜의 선례’가 되살아날 것 같아 우려스럽다.
 
최우열 사회부 기자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