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암초에 부딪혔다. 법원이 19일 새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의 433억 원 뇌물 공여 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특검의 수사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특검은 일단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심도 있게 검토한 뒤 박근혜 대통령 뇌물 수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보강 수사를 할 방침이다.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돈과 박 대통령의 요청으로 최순실 씨(61·구속 기소) 모녀에게 지원한 돈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이 박 대통령 뇌물 수수 혐의 수사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뇌물 수수 혐의 수사 난항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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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선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 원을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액수에 포함시킨 게 '패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두 재단 출연에는 삼성 계열사를 포함해 53개 대기업이 참여했다. 따라서 삼성의 출연금을 '대가성 있는 뇌물'이라고 본다면, 정부에 바라는 게 있으면서 출연금을 낸 다른 대기업들도 똑같이 뇌물 공여 혐의로 처벌해야 하는 것. 이런 경우를 법원이 예상하고 이 부회장 영장을 기각했다는 분석이 많다.
또 영장 기각 결정에는 "대기업 총수라고 특별대우를 할 필요는 없지만, 불구속 재판을 받을 권리는 보장해야 한다"는 여론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 "합병은 경영권 승계와 무관"
18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심사에서 특검팀과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뇌물죄' 성립 여부를 놓고 4시간 가까이 공방을 벌였다. 특검은 파워포인트(PPT)를 이용한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변호인단은 7000페이지가 넘는 의견서를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에게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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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은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재단 출연과 최 씨 모녀 지원을 요청했으며, 그 대가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등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도왔다"며 '뇌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또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이 터진 2014년 말 승마협회 주최 '승마인의 밤' 행사 당시 삼성 측이 사건을 염두에 두고 최 씨의 딸 정유라 씨(21)의 참석을 막은 사실 등을 들어 "삼성이 오래전부터 최 씨의 실체를 알고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법정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내 경영권 승계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며 "합병은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합병이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부라는 특검의 '밑그림' 자체가 틀렸다는 것. 이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직접 변론을 하자 변호인들도 이 부회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를 폈다.
변호인단은 "삼성의 재단 출연과 최 씨 모녀 지원은 모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후에 이뤄졌고, 그마저도 박 대통령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며 "'부정한 청탁'은 추호도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박 대통령이 2015년 7월 25일 이 부회장을 독대해 "승마 지원이 더디다"며 강하게 질책해 어쩔 수 없이 최 씨 모녀를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이 부회장은 최 씨 모녀 지원 사실을 전혀 보고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장관석기자 jks@donga.com
권오혁기자 hy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