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 싸고 부담없는 놀이-식도락, 불황기 새 트렌드 떠올라
《#1 “오빠, 인형 하나 뽑아줘.” 1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인형뽑기 가게. 사람들로 북적이는 가운데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5분여 동안 기계를 붙잡고 있었다. 약 5000원을 쓰고 나서 인형 하나를 뽑는 데 성공한 두 사람은 웃으며 가게를 나섰다.
#2 “딱 한 곡만 더 부르고 가자.” 같은 날 서울 마포구 홍익대 부근의 코인노래방. 늦은 오후 시간에도 7개의 방은 사람들로 가득 들어찼다. 음료수 무제한 서비스에 노래 네 곡 부르는 데 1000원에 불과했다. 일행은 1인당 네 곡씩 부르고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최근 1만 원 이하로 사거나 즐길 수 있는 ‘가난한 취향’이 유행이다. 인형뽑기 가게, 코인 노래방, 편의점 커피(위부터) 등의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인형뽑기는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즐기고 있다. 현행법상 소매가 5000원 이하의 경품만 취급할 수 있어 대부분의 인형은 정품이 아니다. 한 대학생은 “친구들과 함께 1000원으로도 즐거움을 얻을 수만 있다면 가짜든 진짜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코인노래방도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고 있다. 500원으로 두 곡을 부를 수 있는 코인노래방은 혼자 노래를 부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한 노래방 관계자는 “1시간에 1만 원이 넘는 기존 노래방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많다. 요즘 코인노래방이 너무 많이 생겨 경쟁도 심하다”고 했다.
가격이 싼 먹을거리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커피전문점의 커피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1000원 정도인 편의점 커피를 많이 찾는다. 편의점업체 씨유(CU)에 따르면 즉석 원두커피의 전년 대비 매출은 2014년 32%, 2015년 41%, 2016년 67%로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도시락 매출도 전년 대비 2015년 65.8%, 2016년 168.3% 증가했다.
디저트 카페가 유행하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케이크를 구매할 수 있는 마트도 가난한 취향을 즐기기에 부담 없다. 이마트에 따르면 약 1만6000원인 치즈케이크는 지난해 매출이 24.6% 올랐다.
가난한 취향의 유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헌기 문화평론가는 “경제난은 물론이고 사회적 분위기까지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요즘 1만 원 이하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홀로 즐길 수 있는 가난한 취향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며 “자기 만족감과 소비 기준을 계속 낮춰야만 하는 세태가 씁쓸하다”고 밝혔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